[문장모음] 새의 선물 / 은희경 / 문학동네
(p.13-14) 그때 1969년 겨울, 나는 조그만 좌식 책상 앞에 앉아서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목록을 지우고 있었다. 동정심, 선과 악, 불변, 오직 하나뿐이라는 말, 약속...... 마침내 목록을 다 지운 나는 내 가운뎃손가락 마디에 연필 쥔 자국이 깊게 파인 것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그 이후 지금까지 나는 인간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도 뭔가를 쓰다가 이따금 연필을 내려놓고 가운뎃손가락 마디의 옹이를 한참 내려다보곤 한다. 나는 삶을 너무 빨리 완성했다.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라는 목록을 다 지워버린 그때,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p.124) 금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금기를 깨뜨리는 죄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고에게 죄책감은 부당하게 강요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나는 무죄를 선언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사실은 피고 자신이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으며 다만 강요된 죄책감을 치러내고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p.136)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에는 이쁘고 좋기만 한 고운 정과 귀찮지만 허물없는 미운 정이 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언제나 고운 정으로 출발 하지만 미운 정까지 들지 않으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고운 정보다는 미운 정이 훨씬 더 너그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확실한 사랑의 이유가 있는 고운 정은 그 이유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지만 서로 부대끼는 사이에 조건 없이 생기는 미운 정은 그보다는 훨씬 질긴 감정이다. 미운 정이 더해져 고운 정과 함께 감정의 양면을 모두 갖춰야만 완전해지는 게 사랑이다.
(p.210-211) 몇몇 아이들은 선생들을 욕했지만 어디까지나 뒷전에서 저희들끼리 그래보는 것일 뿐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그제야 자기들이 아무리 민주 선거의 원칙을 배워 실천해봤자 '하늘이 볼까 무서워' 고무신 한 켤레 준 후보에게 투표하는 할머니가 받아들인 바로 그 현실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여전히 시험문제를 풀때는 정답을 쓰겠지만 현실에서는 정답을 다른 식으로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p.247-248) 운명적이라고 생각해온 사랑이 흔한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사랑에 대한 냉소를 갖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랑에 빠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얼마든지 다시 사랑에 빠지며, 자기 삶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 유지의 감각과 신랄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집착 없이 그 사랑에 열중할 수가 있다. 사랑은 냉소에 의해 불 붙여지며 그 냉소의 원인이 된 배신에 의해 완성된다. 삶도 마찬가지다. 냉소적인 사람은 삶에 성실하다. 삶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언제나 자기 삶에 불평을 품으며 불성실하다.
(p.272) 대부분의 어른들은 모험심이 부족하다. 진정한 자기의 삶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찾아보려 하기보다는 그냥 지금의 삶을 벗어날 수 없는 자기의 삶이라고 믿고 견디는 쪽을 택한다. 특히 여자의 경우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배후에는 '팔자소관'이라는 체념관이 강하게 작용한다. 불합리함에도 불구하고 그 체념은 여자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햐을 끼친다. 우연히 닥쳐온 불행을 떨쳐내지 않고 받아들이도록 만듦으로써 더 많은 불행을 번식시키기 때문이다.
(p.343) 삶이란 장난기와 악의로 차 있다. 기쁨을 준 다음에는 그것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 기쁨을 도로 뺏어갈지도 모르고 또 기쁨을 준 만큼의 슬픔을 주려고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너무 기쁨을 내색해도 안 된다. 그 기쁨에 완전히 취하는 것도 삶의 악의를 자극하는 것이 된다.
(p.357) 물론 순간적인 느낌일 뿐일 것이다. 아무리 실연의 상심이 컸다 한들 이모는 이모이고 며칠 사이에 다른 사람으로 바뀔 수는 없다. 내가 유의한 것은 이모가 변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모의 내면에 다른 모습이 들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이모의 내면에는 수많은 다른 모습들이 함께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 모습들 중에 하나씩을 골라서 꺼내 쓰는 제어장치, 즉 이모의 인생을 편집하는 장치가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작동되면 이모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체 우리들이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나라는 존재의 진실에 얼마나 가까운 것일까.
(p.360) 나는 삶의 기회에 대해 생각했다. 구국의 영웅이 되는 것과 살인자가 되는 것의 차이는 그에게 어떤 기회가 주어지는가에 달려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살인자가 되는 것은 그에게 살인을 할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고 배신자가 되는 것은 배신의 기회가 왔기 때문이므로. 그 기회를 받아들이느냐 물리치느냐 하는 선택은 스스로가 하는 것이지만 선택의 전 단계에서 어떤 기회를 제공하느냐는 순전히 삶이 하는 일이다. 배신을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지만 배신을 하도록 기회를 마련하는 것은 언제나 삶의 짓인 것이다.
(p.403)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p.434) 세상이 내게 훨씬 단순하고 그리고 너그러웠다면 나는 소설을 쓰지 않읐을 것이고, 아마 인생에 대해서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