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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문장들

[문장모음] 사흘만 볼 수 있다면 / 헬렌 켈러 / 도서출판 사우

(p.43) 나는 비로소 이집트를 빠져나와 시나이산을 마주하고 선 것이다. 거룩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어떤 힘이 내 영혼을 어루만지고 나로 보게 하시니 많은 놀라운 것들을 내가 보았다. 거룩한 산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소리 있었으니, "아는 것이야말로 사랑이요, 빛이요, 비전이라." 나는 그 소리를 들었다.
- 앤 맨스필드 설리번 선생님을 만난 날을 떠올리며 쓴 글



(p.50) 그때 선생님은 다른 한 손에다 처음에는 천천히, 두 번째는 빠르게 '물'이라고 썼다. 선생님의 손가락 움직임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나는 마치 얼음조각이라도 된 양 가만히 서 있었다. 갑자기 잊고 있던 것, 그래서 가물가물 흐릿한 의식 저편으로부터 서서히 생각이 그 모습을 드러내며 돌아오는 떨림을 감지했다. 언어의 신비가 그 베일을 벗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제야 지금 내 손 위로 세차게 내리꽃히는 이 차가운 물줄기가 '물'이라는 것의 정체임을 알았다. 살아 숨 쉬는 낱말의 입맞춤을 받은 내 영혼은 긴 잠에서 깨어나 그것이 가져다준 빛과 희망의 기쁨을 맛보았다. 나는 비로소 자유를 찾았다.



(p.62-63) 그렇다면 사랑은? 무릎 위에 놓인 구슬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오래도록 가만히 앉아서 사랑의 의미를 알아내려고 애썼다. 구름이 잔뜩 끼어 하루 종일 흐린 날씨였다.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가자 언제 그럈냐는 듯 남부 특유의 찬란한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물었다. "선생님, 사랑은 이런 건가요?"
"그래, 맞아. 사랑은 햇살이 비치기 전 끼어 있던 구름 같은 거란다."
당시 나로서는 이 짧은 한 문장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헬렌, 너도 알겠지만 우리는 구름을 만질 수 없단다. 그러나 비를 만질 수는 있지. 한낮의 무더위에 시달려 목마른 대지와 꽃이 단비를 받아 마시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도 잘 알잖니? 사랑도 꼭 그렇단다.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모든 것 위에 부어지는 그 달콤함만은 느낄 수 있지. 사랑이 없다면 행복하지도 뭘 하고 싶지도 않을 거야."
이 아름다운 진리는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람과 사람의 영혼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끈이 느껴졌다.




(p.72-73) 선생님은 '방이 있는 앵무조개'를 읽어주었다. 그리고 연체동물이 조가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꼭 사람의 마음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닮았다고 가르쳐주었다. 앵무조개의 외투막이 물에서 흡수한 재료를 변화시켜 제 몸의 일부를 만들어내는 놀라운 작용을 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모아들인 지식의 파편으로 그 비슷한 변화를 수행하여 마침내 생각의 진주를 만들어낸다.



(p.76) 아이를 교실로 데려오는 건 어느 선생님이나 할 수 있지만 그 아이로 하여금 무언가를 배우도록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이는 할 일이 있든 없든 제 스스로 할 마음을 먹지 않으면 어떤 일이 되었든 즐겁게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교과서를 붙들고 본격적인 씨름에 들어갈 의지를 다지기에 앞서 승리의 기쁨과 실패의 상실감 같은 것을 충분히 겪어봐야 한다.



(p.136) 내가 나이아가라 폭포가 준 놀라움과 아름다움에 감동받았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긴다. 그들은 묻곤 한다. "당신은 지금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음악 운운하는데 대체 그 모두가 당신에게 무슨 의미란 말입니까? 솔직히 일렁이는 파도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으르렁거리는 포효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대체 당신이 무엇을 알 수 있다는 건가요?" 보았으면 또 들었으면 다 안 것인가, 다 설명한 것인가. 사랑이 무엇이며 종교란 무엇이고 또 선함이란 어떤 것인지 설명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이나 나이아가라, 이 대자연의 스스로 그러함을 설명하기 어려운 건 피차 마찬가지 아닐까.



(p.180) 결국 참된 지식을 얻고 싶으면 누구나 우리 앞에 놓인 이 '험준한 산'을 홀로 오를 수밖에 없으며, 정상에 오르는 왕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닌 한 이쪽저쪽 기웃거리며 자기 나름의 길을 개척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다시 일어서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던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쑥 튀어나온 돌부리에 채어 의욕을 상실했다가 다시 추스르고 일어서기를 얼마나 반복했던가. 그렇게 터벅터벅 한 발짝 한 발짝 스스로 용기를 북돋우며 열심을 내 전진해 나아가 마침내 더 높은 곳에 올라 확 트인 지평선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매번의 고투가 또 하나의 승리나 다름없었다. 노력하면 할수록 빛나는 구름에 더 가까이, 푸른 하늘 저 멀리, 내 열망이 숨 쉬는 고원에 한 발 더 가까이 닿을 수 있었다.



(p.182-183) 내가 보기엔 많은 학자들이 위대한 문학작품이란 이성으로 보다는 감성, 깊이 있는 감정의 무게로 읽히고 향유된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는 것 같다. 문제는 그들이 공들여 써놓은 해설 중 어느 것 하나 변변히 기억되는 게 없다는 점이다. 모름지기 정신은, 과실이 무르익으면 나무에서 떨어지듯 그렇게 잘 익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 법이다. 꽃을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 뿌리와 줄기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예를 들어 성장의 전 과정을 연구하라. 그러고 나면 비로소 꽃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럴까? 하늘이 내린 이슬로 방금 씻고 나온 청초한 한 송이 꽃을 아노라 할 수 있을까? 하여 나는 지칠 줄 모르고 묻고 또 묻는다. "어찌하여 나는 이러한 가설과 설명으로 스스로를 들볶는가?" 마치 눈먼 새가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한 날개를 파닥이며 공기 중을 떠돌듯이 내 생각들 또한 그렇게 내 정신 속에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p.236-237) 때로 고독이 찾아들고 차가운 안개처럼 나를 에워싼다. 다만 홀로 앉아 기다린다, 인생이 닫아버린 문 앞에서. 저 너머엔 빛이 있다. 음악과 즐거운 사귐이 있다. 입장을 허락받지 못한 채 나는 문 밖에 있다. 누가 내 길을 가로막는가. 운명, 침묵, 무자비? 아, 이 가혹한 처사에 항변하련다. 내 심장은 아직도 이렇듯 펄떡거리고 들끓건만. 그러나 내 혀는 이 고통을 토로하지 못하고 입술까지 이르렀다 내뱉지 못한 말은 헛되이, 삼켜버린 눈물처럼 마음속으로 되돌아올 뿐이다. 침묵은 내 영혼을 짓누르고 저만치 희망이 미소 지으며 속삭인다. "부디 잊어버림으로써 기쁨을 찾기를." 그래서 나는 다른 이의 눈 속에 든 빛을 나의 해로, 다른 이의 귀에 들린 음악을 나의 교향곡으로, 다른 이의 입술에 떠오른 미소를 나의 행복으로 삼으려고 노력한다.



(p. 263-264) 가끔은 이 모든 것들을 직접 보고 싶다는 갈망으로 가슴이 터질 듯합니다. 만지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즐거운데 직접 본다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그러나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더 적게 보는 듯합니다. 온갖 색채와 율동으로 가득한 세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가진 것을 감사히 여기기보다 갖지 못한 것을 갈망하는 모습이 어쩌면 인간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빛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시각'이라는 재능이 삶을 충만하게 해주는 도구가 되지 못하고 편의를 위해서나 이용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