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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문장들

[문장모음] 모모 / 미하엘 엔데 / 비룡소

(p.23) 그게 무슨 특별한 재주람. 남의 말을 듣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도 많으리라. 하지만 그 생각은 틀린 것이다.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줄 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더욱이 모모만큼 남의 말을 잘 들어 줄 줄 아는 사람도 없었다.

(p.52) 베포는, 모든 불행은 의도적인, 혹은 의도하지 않은 수많은 거짓말, 그러니까 단지 급하게 서두르거나 철저하지 못해서 저지르게 되는 수많은 거짓말에서 생겨난다고 믿고 있었다.

(p.54-55)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그러면 일을 하는게 즐겁지. 그게 중요한 거야. 그러면 일을 잘 해낼 수 있어. 그래야 하는 거야.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긴 길을 다 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겠고, 숨이 차지도 않아. 그게 중요한 거야."

(p.82-83) 시간을 재기 위해서 달력과 시계가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겁과 같을 수도 있고,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겪는가에 달려 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까.

(p.103) 하지만 그들이 가장 견딜 수 없어하는 것, 그것은 정적이었다. 사방이 고요하면, 그들은 자기네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고, 그러면 밀물처럼 불안이 밀려 왔다. 그래서 그들은 정적이 찾아들 것 같은 기미만 보이면 요란하게 소란을 떨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린이 놀이터의 즐거운 소란이 아니었다. 미쳐 날뛰는 듯한 이 불쾌한 소란은 나날이 볼륨을 높여 가며 대도시를 가득 채웠다.

(p.116-117) 내 말을 이해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만, 그 사람들은 모모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했던 거야. 하지만 이젠 그러고 싶어 하지 않아. 또 전에는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들으려고 기쁜 마음으로 날 찾아오곤 했단다. 그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 자신을 잊었던 거야. 하지만 지금은 이것 역시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아해. 그런 일을 할 시간이 없어, 이렇게들 말하지. 너희들을 위해서 쓸 시간도 없다고 해. 뭔가가 있는 것 같지 않니? 도대체 무엇 때문에 시간이 없는지 정말 이상해!"

(p.141) 영업사원은 갑자기 말을 멈추고 모모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마치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어떤 것과 싸우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p.171) "아이들은 우리의 천적이에요. 아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벌써 오래 전에 전 인류를 수중에 넣을 수 있었을 겁니다. 아이들에게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시간을 아끼게 하기가 힘이 들어요."

(p.194-195) 모모는 그렇게 했다. 몸을 돌려 뒷걸음질을 치니 갑자기 전혀 힘들이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모모가 뒷걸음질을 치는 동안 생각도 뒷걸음쳤고, 숨도 뒷걸음쳤고, 느낌도 뒷걸음쳤다. 한 마디로 모모의 삶이 뒷걸음쳤던 것이다!

(p.222-223) "그들은 사람들이 생겨날 기회를 주면 생겨난단다. 기회만 주어지면, 금세 생겨나는 게야.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그들에게 자기들을 좌지우지 할 기회까지 주고 있어. 그런 기회가 주어지기만 하면, 그들은 벌써 사람들을 좌지우지한단다."
"만약 시간을 더 이상 훔칠 수 없게 되면요?"
"그럼 그들은 그들이 태어난 무(無)로 돌아가야 하지."

(p.231-232) "아니야, 모모. 이 시계들은 그저 취미로 모은 것들이야. 이 시계들은 사람들이 저마다 가슴속에 갖고 있는 것을 엉성하게 모사한 것에 지나지 않아.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 있듯이, 너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장님에게 무지개의 고운 빛깔이 보이지 않고, 귀머거리에게 아름다운 새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과 같지. 허나 슬프게도 이 세상에는 쿵쿵 뛰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눈멀고 귀먹은 가슴들이 수두룩하단다."

(p.301) "보다시피 나는 이 꼴이 되었단다. 아무리 원해도 다시 돌아갈 수가 없어. 난 끝장이 났어. '기기는 기기인 거야!' 모모, 이 말 생각나니? 하지만 기기는 기기로 남아 있지 못했단다. 모모, 얘기 하나 해 줄까?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건 꿈이 이루어지는 거야. 적어도 나처럼 되면 그렇지. 나는 더 이상 꿈꿀 게 없거든. 아마 너희들한테서도 다시는 꿈꾸는 걸 배울 수 없을 거야. 난 이 세상 모든 것에 신물이 났어."

(p.314) "그건 중요하지 않아.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돼."
"그럼 뭐가 중요한데?"
파올로가 대답했다. "그게 우리 앞날에 유익한지 아닌지, 그게 중요한 거야."

(p.339-340) 거북은 아까보다도 더욱 느릿느릿 기어갔다. 전에는 그랬듯이 모모는 느리게 감으로써 더 빨리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발밑의 거리가 스스로 미끄러져 나가는 것 같았다. 느리게 가면 느리게 갈수록 더욱 빨리 갈 수 있었다.

(p.350-351) "시간의 꽃을 기억하고 있겠지? 그때 내가 말했잖니.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을 갖고 있기에 그런 황금빛 시간의 사원을 하나씩 갖고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사원에 회색 신사들을 들이게 되면, 회색인들은 시간의 꽃을 야금야금 빼앗을 수 있게 된단다. 허나 그렇게 해서 사람의 가슴에서 뽑힌 시간의 꽃은 죽을 수가 없어. 왜냐하면 그 시간은 진짜 흘러간 것이 아니거든. 허나 진짜 주인에게서 떼어 내졌기 때문에 살아 있다고 할 수도 없지. 시간의 꽃은 전심전력으로 제 진짜 주인에게 돌아가려고 애를 쓴단다."

(p.360) 별안간 강한 진동 같은 것이 일어났다. 그 진동은 공간을 뒤흔드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시간의 지진이었다. 그때의 느낌을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란 없다. 시간의 지진은 일찍이 그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어떤 울림과 함께 일어났다. 수백 년의 깊은 세월에서 흘러나오는 한숨처럼 들리는 울림이었다.

(p.385) 이제 대도시에서는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광경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길 한복판에 나와 놀고, 아이들이 비키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운전자들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차에서 내려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사람도 있었다. 어디서나 사람들이 서서 다정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자세히 물었다. 일하러 가는 사람도 창가에 놓인 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거나 새에게 모이를 줄 시간이 있었다. 의사들은 환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정성껏 돌 볼 시간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일에 대한 애정을 갖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었다. 이제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마다 무슨 일을 하든 자기가 필요한 만큼,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시간이 다시 풍부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