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6) 겨울이 지독하게 추우면 여름이 오든 말든 상관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을 압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냉혹한 날씨는 결국 끝나게 되어 있고, 화창한 아침이 찾아오면 바람이 바뀌면서 해빙기가 올 것이다. 그래서 늘 변하게 마련인 우리 마음과 날씨를 생각해 볼 때, 상황이 좋아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p.25) 이 감옥을 없애는 게 뭔지 아니? 깊고 참된 사랑이다.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최상의 가치이며, 그 마술적 힘이 감옥 문을 열어준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 것과 같다. 사랑이 다시 살아나는 곳에서 인생도 다시 태어난다. 이 감옥이란 편견, 오해, 치명적인 무지, 의심, 거짓 겸손 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p.93) 그림이란 게 뭐냐? 어떻게 해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 그건 우리가 느끼는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사이에 서 있는, 보이지 않는 철벽을 뚫는 것과 같다. 아무리 두드려도 부서지지 않는 그 벽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인내심을 갖고 삽질을 해서 그 벽 밑을 파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럴 때 규칙이 없다면, 그런 힘든 일을 어떻게 흔들림 없이 계속해 나갈 수 있겠니? 예술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일은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을 때 이룰 수 있다. 결코 우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p.107) 너는 아직도 네가 평범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고 했지. 그러면서 너는 왜 네 영혼 속에 있는 최상의 가치를 죽여 없애려는 거냐? 그렇게 한다면 네가 겁내는 일이 이루어지고 말 것이다. 사람이 왜 평범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그건 세상이 명령하는 대로 오늘은 이것에 따르고 내일은 다른 것에 맞추면서, 세상에 결코 반대하지 않고 다수의 의견에 따르기 때문이다.
(p.115) 캔버스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무한하게 비어 있는 여백, 우리를 낙심케 하며 가슴을 찢어놓을 듯 텅 빈 여백을 우리 앞으로 돌려놓는다. 그것도 영원히! 텅 빈 캔버스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삶이 우리 앞에 제시하는 여백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난관에 맞서고, 일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간단히 말해, 그는 저항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p.123) 밀레나 드 그루 같은 화가들이 "더럽다, 저속하다, 추악하다, 악취가 난다" 등등의 빈정거림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꾸준히 작업하는 모범을 보였는데, 내가 그런 악평에 흔들린다면 치욕이 될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되지. 농부를 그리려면 자신이 농부인 것처럼 그려야 한다. 농부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며 그려야 할 것이다. 실제로 자신이 누구인가는 잊어야 한다. 자주 생각하는 문제인데, 농부는 여러 가지 점에서 문명화된 세계보다 훨씬 더 나은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점에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도대체 그들이 예술이나 다른 많는 것에 대해 알아야 할 이유가 있겠니?
(p.130) 작년 겨울 눈 속에서 당근을 뽑고 있는 여인을 보았는데, 지난 며칠 동안 은 그 모습을 그렸다. 밀레도 일하는 사람을 그렸지. 레르미트, 이스라엘스 같은 농촌화가들 중 상당수가 노동을 다른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으로 간주했다. 그런데 이제는 인물을 그리는 화가가 얼마나 적은지 모른다. 그래, 다른 무엇보다 인물 자체를 위해서, 형식과 입체적인 표현을 위해 그리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인물을 그린다면, 움직이고 있는 모습으로 그리는 것 외에 다른 가능성은 상상할 수 없다. 움직임 자체를 위해, 그것을 포착해서 그리고 싶다. 관습적인 동작을 많이 그렸던 엣 거장들과 네덜란드 거장들조차 피하고 싶어 하던 바로 그 움직임을 그리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유화든 데생이든 인물 자체를 위한 인물화, 이루 말할 수 없이 조화로운 인간 육체의 형식을 위한 인물화, 그러나 동시에 눈 속에서 당근을 뽑고 있는 인물화라야 한다.
(p.154)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러니 네 스스로 퇴보하길 바라지 않는 이상 공부는 필요하지 않다. 많이 즐기고 많은 재미를 느껴라. 그리고 오늘날 사람들이 예술에서 요구하는 것은 강렬한 색채와 강한 힘을 가진 살아 있는 어떤 것임을 명심해라. 네 건강을 돌보고 힘을 기르고 강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최고의 공부다.
(p.189) 시인, 음악가, 화가...... 그 모든 예술가들이 불우하게 살았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네가 최근에 모파상에 대해 했던 말도 그 사실을 증명해 주는 것 아니냐. 이건 영원히 되풀이되는 물음을 다시 묻게 한다. 우리는 삶 전체를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죽을 때까지 삶의 한 귀퉁이밖에 알 수 없는 것일까? 죽어서 묻혀버린 화가들은 그 뒷세대에 자신의 작품으로 말을 건다.
(p.199) 요람에 누워 있는 아이를 바라보면, 눈 속에 무한이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잘 모르겠다'는 이 느낌이 현재의 우리 삶을 단순한 철도여행에 비유할 수 있게 해준다. 기차를 타고 빨리 전진할 때면, 아주 가까이서 지나치는 대상도 분간할 수 없고 무엇보다 기관차 자체를 볼 수 없다.
(p.262) 불평하지 않고 고통을 견디고, 반감 없이 고통을 직시하는 법을 배우려다 보면 어지럼증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건 가능한 일이며, 심지어 그 과정에서 막연하게나마 희망을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삶의 다른 측면에서 고통이 존재해야 할 훌륭한 이유를 깨닫게 될지도 모르지. 고통의 순간에 바라보면 마치 고통이 지평선을 가득 메울 정도로 끝없이 밀려와 몸시 절망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고통에 대해, 그 양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러니 밀밭을 바라보는 쪽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게 그림 속의 것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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