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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여우 오는날 / 천옌링 / 리틀브레인


미소 짓게 하는 것
 
 

 
 
 
  아이에게 '여우 오는 날'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나는 이 그림책의 마지막이 슬펐지만, 아이는 좀처럼 슬퍼하지 않았다. 반복해서 가져오는 이 책을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주던 중, 아이가 말했다.
 
"거봐 엄마. 여우가 웃고 있잖아."
 
  책을 읽은 후 느껴지는 엄마의 씁쓸함 때문이었는지, 아이가 말했다. 여우는 웃고 있다고. 그리고 이 그림을 가장 좋아하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여우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앞선 그림에서 계속 까칠하기만 했던 여우가 편안한 숨결을 내뿜으며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런 이유에서 이 책의 제목이 '여우 오는 날'이 되었던 걸까 생각했다.
 
  외로움은 외로움을 알아본다. 가장 추운 겨울날, 가장 외로운 존재들이 만났다. 하얗기만 한 계절에 붉고 흰 모습을 띈 두 존재는 모습은 달랐어도 그 외로움이 같았다. 몸서리치게 차갑고 공허한 곁을 채워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때로는 그 감정에 익숙해져서 무뎌질 때, 말 걸어주는 상대에게 날 서게 반응하는 것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너무 추운 겨울이기 때문이다.
 
  나무와 여우는 겨울에만 만났다. 빛과 색이 가득한 계절에는 외로움이 그럭저럭 참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빛과 색이 사라지고 하얗기만 한 겨울에는 그 어둠이 더 짙어져 보였을 것이다. 그들의 외로움이 선명하게 붉어질 때 나무와 여우는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여우는 나무의 둥치 구멍 아래에서 따뜻하고 평온하게 쉴 수 있었다. 고단했던 여우의 얼굴에 평온한 미소가 깃들었을 때, 비로소 나무는 공허한 자신의 구멍이 따뜻한 숨결로 채워지는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만날 수 없게 되었을 때라도 그때가 되면 나무는 늘 붉고 흰 여우를 떠올렸다.
 
  나에게 미소 지을 수 있는 존재가 있는가 생각해 보았다. 혼자 골방 속에 스스로를 가두려 할 때 비슷한 외로움을 가지고 있는 내 주위 친구들을 떠올린다. 대단한 재미가 없어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밖에 오고 가는 것이 없어도, 그 안에서 나는 웃고 있다. 소녀시절 숨차게 뱉었던 깔깔거림을 되찾게 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항상 만날 수 없어도 떠올릴 수 있는 존재들이 있음에 감사하다. 나도 누군가에게 떠올리기만 해도 미소 지을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