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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소년이 온다 / 한강 / 창비


나에게도 소년이 온다
 
  하루면 읽겠다고 생각한 책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읽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였지만,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져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눈을 지그시 감으며 이것이 어떻게 실제인가 탄식해 볼 뿐이었다. 한숨에 한 챕터씩 읽었다. 그리고 잠잠히 그 사람의 얼굴을 머릿속에서 한 번 그려보았다. 책에 나오는 사람 하나하나 내가 마치 아는 사람들 같아졌다. 그래서인지 책을 덮었을 때 끝을 모르게 밀려오는 공허함과 아득한 체념 같은 것이 내 어깨에 내려앉은 것 같았다. 털어내고 싶었지만 또 그냥 이렇게 보내버릴 수는 없었다. 잘 알고 있는 이야기. 그러나 당연할 수도 없고 답을 얻을 수도 없는 이 혼란스러운 이야기. 이 책을 이렇게 지나 보낼 수가 없었다. 답을 얻고 싶어졌다.
 
  1980년 5월 18일. 참혹했던 광주에서 스러졌던 소년들과, 그 소년들을 기억하는 인물들이 나와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자유와 진실을 억압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자신들의 삶을 덤덤히 이야기한다. 그렇게 텅 빈 가슴으로 세월만 훌쩍 지나버린 그들에게 소년이 온다. 그 소년의 모습을 기억하고 기별을 들을 수 없는 안부를 묻고, 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을 남긴다. 그들의 기억에, 그리고 끔찍한 사진에만 존재하는 소년을 느끼며 그들은 무언(無言)의 질문을 듣는다. 왜 살아있냐고. 나는 왜 살아있냐고. 거대하고 자비 없는 폭력이 그저 역사일 뿐인지. 우리가 겪었던 일들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질문한다. 그들도 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44년이 지난 지금의 나도 이 일들 앞에서 질문을 할 수도 없고 답을 얻을 수도 없어 이 책은 유독 무력감이 많이 찾아온다. 그래서 어떤 감정을 가질 수도 없고 그저 엄숙해질 뿐이다.
 
  그런 사실 앞에 우린 왜 엄숙해지기만 한 것일까. 엄숙함을 들추어내면 어쩌면 불편함일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이렇게 평화로운 나라에서, 자유와 권리가 지켜지고 폭력이 말도 안 되는 세상에서 저런 이들이 있었다고? 나랑 상관없는 일들 같다. 우린 저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고, 또 그 시절의 사람들에 대해 익히 들어왔다. 그저 지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우린 그 시간에 참여하지 않고도 이 끔찍한 사실을 들을 수 있고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설명할 수 없다. 저들의 마음을. 사실 그럴 필요도 없을 수도 있다. 너무나 명확하게 나는 그 사람들이 아니니까. 그런 우리에게 이 책을 통해 소년이 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자신도 누릴 수 있었다고.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동시에 당신은 안다. 그해 봄과 같은 순간이 다시 닥쳐온다면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초등학교 때 피구 시합에서, 날쌔게 피하기만 하다 결국 혼나 남으면 맞서서 공을 받아 안아야 하는 순간이 왔던 것처럼. 버스에서 터져 나오는 여자애들의 쨍쨍한 노래에 이끌려 광장으로, 총을 든 군대가 지키는 광장으로 걸었던 것처럼. 끝까지 남겠다고 가만히 손을 들었던 마지막 밤처럼. 희생자가 되어선 안돼,라고 성희 언니는 말했다. 우리들을 희생자라고 부르도록 놔둬선 안돼. p.175 

 
 
  작가는 말한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순전히 오해였다고.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에 남아있었던 것이었다고. 다시 돌아온 진수와 동호,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선주. 뺨 일곱 대보다 꺾이는 그들의 진실을 두려워했던 은숙, 얼굴이 파랗게 질릴 정도로 겁이 나면서도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어린 시민군들. 그들이 지키고 싶었던 것은 자신들이 희생자가 아니라는 진실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계엄령을 선포받을 만큼 잘못한 것이 없으며, 팔십만 발의 탄환이 필요할 정도로 위협적인 폭도가 아니었다는 것.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 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 뿐 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중략)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p.134 ~ 135  

 
  살아남은 사람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바라보는 우리들 안에 질문이 생기지 않는다면, 혹은 그것이 시간에 씻겨 가버린다면 우린 어쩌면 그때 총알을 쏘고 있는 군인이 될 수도 있고, 무력하게 바라보기만 하는 군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작가가 용산에서 또 다른 광주를 보았던 것처럼, 나도 내 세상에서 보았던 또 다른 광주들이 내 머릿속에 지나간다. 이 질문이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우린 질문해야 한다. 그 시간과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이 만나는 느낌이다. 그렇게 굴러가는 것이 ‘역사’라 정의하고 그것을 그저 ‘광주’라고만 얘기하기에는 답을 얻지 못하는 질문이 너무나 많다. 사원이 되어 영원히 그 시간에 멈추어버린 사람들이 많다. 아직 오고 있는 소년들을 마주하기가 너무 힘겨워 죽음으로 그것을 해결해 보려는 파국까지도 존재한다. 작가는 자신의 삶에 그 소년을 초대하였고, 그 소년이 와주었다. 기꺼이 그 시간에서 질문에 답을 얻겠다고 다짐하였다. 작가의 인터뷰 중에서 그녀는 이 질문과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한 것이 기억난다. 나 역시 그 소년을 내 삶에 초대하고 싶다. 내가 사는 이 현실에서 나는 인간이기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내가 디디고 서있는 이 작은 땅에서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어떤 것을 지켜야 하는지 나에게 답을 알려주기를 기다려본다.
 
[24년 11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