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우리 집 둘째 아들의 태몽은 고양이었다. 어느 겨울 주말 늦은 오후, 회사 일과 가정일을 번갈아 가다가 지쳐버린 내가 아주 달콤한 낮잠을 자고 있을 때였다. 꼭꼭 닫아둔 암막 커튼 사이로 쏟아지는 볕뉘에 눈이 부셔 살며시 눈을 떠보니, 내 발 왼쪽 편에 어디서 들어왔는지 모르는 고양이 한 마리가 식빵 굽는 자세로 야옹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꿈을 꾸는 순간에도 이게 꿈인가 아니면 내가 깬 건가 헷갈릴 정도로 내 방 그대로의 모습이 나왔다. 흰색에 노란색 얼룩을 가진 커다란 고양이 한 마리가 -아들이 확실했었나 보다. 그때도 무슨 고양이가 저렇게 크니 생각했다- 너무나 평온한 얼굴로 나를 쳐다봐 주었다. 아니 쟤가 어디서 들어왔지? 창문이 열렸었나? 하다가 포근포근 따뜻해 보이는 고양이를 한번 만져보려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꿈에서 깨었다. 한 번 전적이 있던 나로서 직감적으로 이것은 태몽이다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1번의 출산과 긴 휴직으로 사무실에서 천덕꾸러기로 찍혔던 내가 이제 회사에서 조금씩 스파크가 튀기 시작할 때였는데, 또 임신이라니 하며 걱정과 또 환희가 함께 공존하던 그때가 생각난다. 결국 아이들로 인해 포기했던 직장이었지만, 지금은 그 고양이만큼 사랑스러운 나의 둘째 아들은 고양이의 애교를 타고 태어난 건지, 늘 내 옆에서 하나의 사랑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귀한 존재가 되었다. 나에게 고양이는 그래서 특별한 존재다.
여기 '100만 번 산 고양이'가 있다. 이 고양이는 무슨 사연이 있길래 백만 번이나 살았을까 생각했다. 아주 단단하며 힘 있고 강직한 모습이다. 초록 눈을 가진 그 고양이는 기개가 느껴지는 듯하다. 내가 꿈속에서 봤던 그 포근하고 따뜻한 고양이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예뻐서 머리라도 쓰다듬을라치면 "네까짓게?!" 하면서 솜방망이 한번 날려줄 것 같다. 무섭고 차갑다. 어쩌다 쟤는 저렇게 차갑고 단단해졌을까?
책 속에 고양이는 만난 사람도 많았고, 했던 일도 참 많았다. 그랬던 고양이는 싫어했던 것도 참 많았다. 마술을 싫어하고, 바다도 싫어하고, 할머니도 싫어했다. 모든 것에 염세적이었던 고양이는 울지도 않았다. 고양이는 울어야 제맛인데. 백만 번이나 산 고양이는 그 많았던 삶 속에서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왔다. 그렇지만 고양이를 만났던 사람들은 달랐다. 그 고양이를 통해 많은 일을 했고, 또 많이 슬퍼했다. 하나같이 슬퍼했던 그 많은 사람들과 이별한 고양이는 다음 생에서 또 묵묵히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고양이가 드디어 백만 번째 삶에서는 오로지 혼자였다. 혼자가 된다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혼자로 태어난 고양이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무려 백만 번째 삶에서.
고양이는 처음으로 울었습니다.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또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고양이는 백만 번이나 울었습니다. 아침이 되고 또 밤이 되고, 어느 날 낮에 고양이는 울음을 그쳤습니다.
고양이가 엉엉 울고 있다. 입을 크게 벌리고 혓바닥을 길게 빼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닦아낼 새도 없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올려 들고 세상이 떠나가라 슬프게 소리를 지르는 것 같다. 알아들을 수 없는 고통이 가득 찬 숨을 토해내듯 웅얼웅얼. 그동안 수도 없이 찾아왔던 이별, 백만 번째 이별이 찾아온 것이다. 그동안의 이별 가운데 고양이는 단연코 한 번도 운 적이 없다. 그랬던 고양이가 속절없이 무너져서 엉엉 울고 있다. 이제야 나는 고양이가 따뜻하다는 것을 느낀다. 차갑고 단단했던 마음을 깨고 그 안에 아주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무엇이 흘러나오는 느낌이다. 같이 울어줄 수 있다면. 울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큰 축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제 고양이는 백만 한 번째 삶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고양이는 환생의 문턱에서 과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궁금해하면서 이 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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