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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지켜야 할 세계 / 문경민 / 다산책방


다름 다운 세상
 
 
  몇 년 전 모교의 후배들을 대상으로 하는 진로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옛 시절도 새록새록 되새기며 학생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학생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뇌병변 장애를 가진 학생이었다. 휠체어와 함께 이동하는 불편한 몸짓에 나도 살짝 긴장이 되었다. 장애정도가 심해보이는 학생이었기에 시작도 전에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티 내지 않기 위해 다소 과해보이는 친절한 인사와 함께 대화를 시도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학생의 말에 난색을 표하는데, 활동지원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제가 엄마입니다."
  학생의 어머니는 졸업 후 취업할 곳이 마땅하지 않아서 걱정이 많으셨다. 장애인고용공단과 장애전형 채용이 가능한 공기업을 몇 군데 안내드렸다. 차마 쉽지 않을 것이란 말을 전하지 못했지만, 아마 알고는 계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늘 상담이 유익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씁쓸했던 기억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을 적어보다가 '시영'을 보며 그 학생이 떠올랐다. 졸업을 했을 터이고, 원하는 곳에 취업은 했을까 궁금해졌다. 그러다 이내 그때 느꼈던 안타까움이 다시 몰려왔다. 책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환갑을 바라보는 윤옥은 고등학교 국어교사이다. 승진시험도 매달리지 않았던 그녀에게 2학년 문과반 담임을 하고 싶다는 뚜렷한 의지가 생겼다. 그것은 시영 때문이었다. 뇌병변 장애를 가진 시영이 고등학교 수업을 잘 마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입시제도에 맞지 않는 수업방식을 가졌다는 이유로 학부모들로부터, 또 윗선으로부터 거절당한다. 끊임없는 압박에도 왜 이리 고집을 부리는가 하고 생각이 들 때, 그녀의 과거 이야기를 알 수 있었다.
  뇌병변 장애를 가진 동생 지호와의 이별을 시작으로, 윤옥에게는 삶의 고통과 불운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뿌리 깊은 죄책감과 분노는 주변에서 당연하게 흘러가는 일들에 의심을 가지게 했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자유가 억압되던 군사정부였다. 주변의 압박 속에서도 그녀는 의심을 버리지 않고 옳은 것에 대한 확신을 지키기를 원했다. 하지만 지킬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그녀가 아끼던 제자 수연이 그랬다. 야학당에서 그녀의 세상을 자랑스러워하며 남다른 당당함을 보여주던 수연이, 스스로 망가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절규하는 윤옥의 모습이 상상되어 마음이 아팠다. 그녀가 마주하는 사람과 사건들이 그녀를 더욱 강직하게 만든 느낌이었다.
 

  교육학을 전공하지 않은 나에게 이 책에서 낯설었던 단어가 하나 있었다.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피억압자의 교육학. 그 사상을 기준으로 함께였던 정훈과 윤옥은 오히려 그 사상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모두에게 생각할 기회를 줄 수 있는 교육가치관을 지닌 윤옥과, 우수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의 서열화를 주장했던 정훈. 결국 그들은 그들이 가진 생각대로 삶을 살았고, 그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 '최강윤옥'이라 붙은 윤옥의 별명은 그 결과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프레이리는 포르투갈에 의해 구축된 브라질의 사회체제가 민중을 어떻게 억압했는지 설명했고 굴종을 강요하는 사회체제를 뒤집을 저항이 교육을 통해 가능하다고 했다. 문맹퇴치 교육을 통해 민중을 다시 세우고자 했으며 '대화'를 핵심으로 하는 교육방식을 통해 민중을 깨울 수 있다고 했다. 투쟁, 해방, 의식화 같은 단어가 과감히 쓰였고 그런 개념들은 윤옥의 지난 삶과 맞물리면서 살아 있는 지식으로 자리 잡았다.
  프레이리를 공부하다 보면 가슴이 저렸다. 의식이 깨어나는 신선한 통증이었다. 가슴뼈 아래 쟁여둔 것들이 울컥거리며 솟아 나왔다. 자기를 보아달라고, 우리를 보아달라고 아우성치는 지식이 윤옥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를 무시하고도 네가 너일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엄마가 생각나는 학문이었다. 프레이리를 공부하다 보면 지호가 떠오르기도 했다.(p.111)



  '페다고지'는 금서였다. 아마 그 암울했던 시절에 거슬리는 불온한 단어들이 많은 탓일 것이라 생각했다. 읽어보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윤옥은 이 책을 읽을 때 엄마와 지호를 떠올렸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이 책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상처들을 보듬어야 한다는 소명으로 바뀌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삶의 시련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스러진 소위 '팔자'라는 것들이, 교육을 통해 바꿀 수도 있었다는 안타까움이 들었을 것이다. 장애로 인해, 돈으로 인해, 어떤 환경과 기준으로 인해 차별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동생과 엄마는 그 기준에 미달된 사람이었기에 그랬다. 다양한 환경과 생각들을 인정하지 않는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그것. 그것으로부터 자신의 교육철학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내 세상에서, 또 내 아이들에게 다름다움을 얼마나 인정하고 살고 있을까. 정훈 같은 사람이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겉으로는 타인을 인정하는 듯 하나, 내 기준이 전부인 양 가끔 허영스럽게 떠들어 대는 위선이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 그 위선을 발견하는 날이면 스스로에게 많은 자책이 든다. 머리로는 알겠지만 실제 삶으로 실천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의 윤옥의 시선을 따라가며, 나는 어떻게 하면 세상의 기준에 눈치 보지 않고 다름다움 앞에 진실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