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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떨림과 울림 / 김상욱 / 동아시아


일상을 힘 있게 살아가기 위하여
 
 
   설날 새벽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가까이 지내고 계셨지만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몸과 마음이 멀어져 무관심하게 지내다 갑작스럽게 접한 부고를 통해 복잡한 감정들을 느꼈다. 시간은 과거로 흐를 수 없다지만, 내 과거에 남아있는 할머니의 모습들이 다시 살아나서 많이 슬퍼졌다.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았던 엄마의 육아메이트가 외할머니 었기에, 나의 기억 곳곳에 남아있는 외할머니는 할머니와 엄마 그 중간 어디인 것 같았다. 병실에 누워계신 모습을 보았고, 입관식도 참여했지만 여전히 내 기억에는 좀 더 젊으셨던, 손녀들을 챙기시던 할머니가 있다. 빈소에 놓여 있는 외할머니의 사진이 자꾸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반복하였다. 할머니가 내 곁에 계셨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동시에 이 책을 읽으면서 질문하고 생각했던 많은 구절들이 떠올랐다.
 
 

"안다는 것은 본 것을 기억하는 것이며, 본다는 것은 기억하지도 않고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둠을 기억하는 것이다."
양자역학적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본 것을 그리는 게 아니다. 있는 그대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았다고 믿는 것을 그린다.(p.119)

 
  양자역학에서 전자를 측정한다는 것은 전자가 떠난 위치를 찾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전자의 실제를 측정할 수 없다고 했다. 곁에 있을 때는 모르다가, 떠난 뒤에 외할머니의 존재를 깨닫는 내 모습이 그러하다. 늘 계실 것 같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언젠가 돌아가실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나의 20대 시절부터 할머니는 항상 아프셨다. 몇 차례 수술도 하셨다. 몸이 많이 쇠약해지셔서 줄곧 병원과 방 안에만 계신 할머니를 1년에 몇 번 정도 뵈러 갈 뿐이었다. 언젠가 돌아가시게 되면 때가 되었겠거니 생각했는데. 실제 일어난 이별 앞에서 허망함과 슬픔과 후회가 밀려왔다. 잊고 있었던 존재가 오히려 생생하게 살아났다. 할머니가 어떤 분이었는지 기억하기 위해 글을 썼다. 내가 쓰고 있는 것은 할머니가 아니고, 내 곁에 계셨던 할머니의 존재라는 것도 이 구절 앞에서 다시 느꼈다. 곁에 있을 때 소중함을 아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자연이 확률적으로 가장 그럴 법한 상태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을 '열역학 제2법칙'이라 부른다. 이 과정을 정량적으로 표현하면 "엔트로피는 증가할 뿐이다."가 된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통계적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진행한다는 의미이다. 이 과정에 카오스가 일어나고 있으며, 지수함수적으로 빠르게 초기조건에 대한 정보가 사라진다. 그래서 엔트로피는 무지의 척도다. 통계적 상태에 도달하면 초기조건에 대한 기억은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 그것이 확률적으로 가장 그럴 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뉴턴은 우주에 법칙을 주었다. 하지만 그 법칙은 예측 가능성까지 보장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예측이 있다. 엔트로피는 증가만 한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내일로 갈 수는 있어도 어제로는 갈 수 없다. 분명히 그러하다.(p.105)

 
  결국 삶이 카오스라고 생각했다. 출생과 죽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삶에서 미리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나 보면 화살처럼 흘러간 시간 속에서 과거를 되짚으며 추억하거나, 혹은 후회하거나 할 뿐이다. 고우셨던 이름과는 다르게 다사다난했던 할머니의 생애를 지켜보며, 또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내 앞의 일들을 떠올리며 삶이 이렇게 예측불가능 한 것은 엔트로피 법칙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예전 어느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인생은 고난 앞에서 인과관계를 뛰어넘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앞의 사건이 이러해서 내가 불행하게 된 것이 아니다. 우리 앞에 벌어진 일들을 받아들이고 또 살아가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다. 할머니는 그것을 이미 아셨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어려움 앞에서 늘 의연하셨던 할머니의 모습들을 떠올려본다.
 
 

인생을 살아가며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들을 위상수학적 구멍의 개수에 비유할 수도 있다. 구멍의 개수를 유지할 수 있다면 어떤 변형도 받아들이며 자유롭게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위상수학적으로는 모두 동등한 삶이다. 삶의 겉모습을 몇 배로 늘리는 것에는 집착하면서 정작 바꿀 수 없는 인생의 가치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닐까? 나에게 있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인생의 가치는 무엇일까? 위상수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p.83)

 
  시간과, 공간과, 중력과, 가속과, 에너지를 가진 이 우주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그것을 현실이라고 부른다. 아침에 해가 뜨고, 무엇을 먹고, 어느 곳을 가고,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저녁이 되는 어김없는 하루를 살아간다. 이런 현실은 어쩌면 의미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김없음이 깨어지고 일어난 당연하지 않은 것들 앞에서, 우리는 현실을 넘어서는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 같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도넛이 늘어지고 길어지고 휘어지는 비유처럼, 우리 삶이 틀어지는 그때 변하지 않는 가치를 발견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일을 통해 어떤 것을 발견해야 할까. 좀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 모진 삶 속에서도 엄마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셨던 할머니를 존경한다는 것이다. 또 그 모습을 닮아가고 싶다. 그것을 떠올리며 오늘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 앞에서 좀 더 인내하는 힘이 생겨나기도 한다. 중요한 가치들을 발견하고 현실에 돌아왔을 때, 우리는 또다시 어김없는 하루를 좀 더 힘 있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리학이 가장 어려웠던 문과생에게 이 책은 물리학으로 삶을 바라보는 법을 알게 해 주었다. 지금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너무 복잡하거나, 혹은 무기력하거나, 일상을 뒤트는 어려운 일들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물리학을 잘 몰라도 된다. 우리는 저자가 우주를 바라보는 황홀한 시선으로 우리의 삶을 다시 바라볼 수 있으면 될 것이다. 우리가 가진 떨림과 그것을 받아내는 울림을 찾는데 가장 좋은 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