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갈등과 화해의 연속

이 책을 덮으면서 인간의 역사는 갈등과 화해의 연속이라고 생각했다. 특별히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20세기는 갈등과 화해가 극렬했다. 많은 사상들이 생겨나고, 많은 전쟁들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저자는 이 책의 초판 원고를 1987년 스물여덟 살에 썼고, 나는 이제 갓 태어난 아기였다. 이제 21세기 서른아홉의 나이로, 숫자와 사실 그 자체만으로만 알고 있던 그 시간에 다시 들어간다. 어쩌면 내가 살아온 삶이 순탄하지 않았던 이유 중 일부는 세상의 격렬했던 갈등과 화해의 물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세상의 어떤 일도 홀로 벌어진 일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연도별로 외웠던 사건들이, 인물들과 사건들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이해할 수 있어서 이 책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이 책은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핵심적인 사건을 시작으로, 각 나라별 혁명과 사상 그리고 인물들, 경제대공황, 팔레스타인의 전쟁, 인종차별, 핵무기와 공산주의 해체까지 20세기의 굵직한 이슈들을 잘 정리하고 있는 책이었다. 많은 것들이 태어나고 많은 것들이 변한 만큼, 갈등이 더욱 깊어지고 악(惡)이 창궐하는 20세기였다. 히틀러를 시작으로 홀로코스트, 팔레스타인의 전쟁과 학살, 베트남에서의 양민학살에 대한 서술이 등장할 때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덤덤하게 서술하는 희생자에 대한 통계를 읽는데도 마음이 울컥했다. 내 안에 그래선 안된다는 인간으로서의 선(善)이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악의 종점이 핵무기였을 때, 인간의 욕심과 갈등과 분열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왜 인간은 이렇게 서로 죽고 죽이는 사건을 끊임없이 지나오고 있을까. 역사를 들여다볼 때마다 생각나게 하는 질문이다.
(p.123) 옳든 그르든, 경제학자와 정치철학자의 사상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무엇보다 강력하게 세상을 지배한다. 어떤 이념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고 자신하는 현실주의자가 쓸모없어진 지 오래인 경제학자의 노예나 다름없는 경우가 많고, 하늘의 소리를 듣는다는 미치광이 권력자의 광란도 알고 보면 어떤 해묵은 학구적 잡문에서 뽑아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단언하건대, 기득권의 위력은 사상의 점진적 침투력에 견주어 크게 과장됐다. 당장이 아니라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를 보라. 경제학과 정치철학 분야에서는 스물다섯 또는 서른 살이 넘어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흔치 않아서 공무원과 정치인은 물론이요 선동가조차 최신 사상을 현안에 적용하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언제든, 선과 악 모두에 위협이 되는 것은 기득권이 아니라 사상이다.
케인스는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기득권이 아니고 사상이라고 했다. 사상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일 것인데,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처럼 하나의 세상을 자기가 보는 것이 완전하다고 믿는 모든 생각이 프레임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사상은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절대기준이 되어 이분법적 사고만을 가졌을 때 갈등과 불행을 초래한다. 해결을 위한 진전이 아닌 시시비비를 가리는 후퇴가 되어 버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가 물과 기름으로 나누고 지금까지 전쟁이 멈추지 않는 이유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악(惡)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악(惡)은 대물림 되어, 생각과 행동의 기준이 되는 것 같다. 독일 나치에서는 열등한 인종을 없애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60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을 학살했다. 독일의 어떤 시민도 이 목표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절멸주의적 반유대주의'를 내면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00년이 채 못지나 벌어진 팔레스타인 전쟁에 악(惡)은 대물림 된다. 발생 배경이 다르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아랍인들을 향한 적개심과 우월주의가 만연하다. 더욱더 잔인하게 몰아붙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과거 피해자였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인종차별로 인해 몸살을 앓았던 흑인들이 다시 동양인을 배척하는 것, 또 식민지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었던 한국이 가해자가 되어 베트남 국민들을 무참히 살해한 것. 이 모든 것들이 악이 새로운 가해자를 만드는 일 같았다. 우리나라는 베트남 학살에 대해 사과했을까? 궁금해져 찾아본 기사의 사진에서 또렷이 보이는 '헌병'이라는 글자에 부끄러움과 슬픔을 느꼈다. 55년이 지난 2023년 우리나라 법원에서 퐁니. 퐁넛 학살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했다고 한다. 아래 링크는 그 기사와 관련된 것이다.
https://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2034720
악(惡)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20세기 역사 안에서 선(善)을 실현하려고 했던 노력들이 있었다. 과거를 바라보는 후손 입장에서 어떤 것을 배워야 할까 생각했을 때, 후퇴가 아닌 진전을 시도하는 입장에 더 마음이 가게 되었다. 사상이나 절대적인 기준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기 위해 힘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과 민족의 평화에 정직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1. 오슬로 평화협정 :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화해의 시도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을 통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화해의 물결이 일었다.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와 PLO의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은 이 일을 계기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때 전쟁이 종결되었으면 좋으련만. 뿌리 깊게 내려앉은 혐오와 분노로 가득 찬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했고, 결국 두 리더는 자기 국민들에게 살해당했다. 부서진 화해의 조각들은 더 날카로워지고, 더 격렬해진 내전과 테러에 전 세계가 두려워하고 있다. 더 이상 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고한 국민들을 대상으로 점점 더 잔혹해지는 전쟁 앞에 온 세계가 무기력해지는 것 같다. 저자는 가해자인 이스라엘에게 해결의 열쇠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후대에 히틀러보다 더 잔혹한 국민이 있었다고 남기고 싶지 않다면, 그들이 하고 있는 명분 없는 전쟁을 속히 해결할 방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2. 호찌민 : 오랫동안 꿋꿋하게 적의 총구 앞에서 버틴 민족 지도자
1945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베트남민주공화국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었다. 프랑스뿐 아니라 중국 공산당과 일본, 영국과 미국 등 여러 나라로부터의 침략과 전쟁을 견뎌야 했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비슷한 결을 가진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는 민족주의자 호찌민이 있었다. 베트남의 한 지명 이름 정도로 알고 있었던 인물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p.252) 그는 베트남이 자유로운 독립국가로서 민주공화정을 수립했으며, 프랑스가 베트남을 대표해 승인한 모든 조약을 파기하고 프랑스가 누리던 모든 특권을 폐지한다고 선언했다. "독립선언"은 민족통일전선의 대의를 충실하게 반영했다. '공산주의'나 프롤레타리아독재' 같은 말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호찌민은 베르사유궁전 복도를 서성거렸던 26년 전의 '응우옌아이쿠옥'과 동일한 민족주의자였다.
어떤 사상이나 자신의 위치를 지키려 했던 인물이 아니었다. 오로지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싸웠던 사람이었다. 그의 유언장에는 민족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자신의 장례식에 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할까 봐 걱정하였다. 자신의 일생에 후회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사망 이후 적국이었던 미국의 타임지에서는 그의 공로를 인정하며 추도하였다. 베트남 국민들이 왜 그토록 사랑하는 영웅이었는지 공감하게 되었다.
3. 미하일 고르바초프 : 잘못을 개선하려 했던 진정한 혁명가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공산주의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기득권 입장이 아닌, 농민의 입장에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 하에 국민들이 어떻게 가난해지는지, 어떻게 무기력해지는지를 실제로 경험하며 자라난 사람이었다. 그는 혁명을 통해 세워진 지도자가 아니고, 지도자에 올라와 혁명과 개혁을 꿈꾸었다. 소련이 간섭하고 있던 많은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선포를 바탕으로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과도한 중앙통제로 인한 경제정책의 실패를 지적하고,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억압한 정치체제가 소련의 얼마나 많은 청년들을 알코올 중독으로 빠지게 했는지도 역설했다. 그가 꿈꾼 개혁을 통해 공산주의가 얼마나 실효성이 없는 사상이고 나라인지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세계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공산주의를 소멸시켰다. 자신의 위치가 바뀌었다고 현실에 눈감고 권력을 지킨 것이 아니고, 그가 느꼈던 부조리함을 개선하려고 노력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후퇴가 아닌 인류의 진전을 가져온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의 갈등과 화해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영원한 화해가 없을 것 같기도 한 것처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4년째 끝을 모르고 진행 중이다. 무고한 민간인의 학살과 도시의 파괴 등 끔찍한 뉴스에 이제는 세계인들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을 대할 때처럼 무기력 해져가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어떠한가. 어느 때부터 시작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물과 기름처럼 나뉘어 갈등의 거센 접전에서 화해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듯하다. 저자는 인류는 '역사의 시간'을 불가능은 없다고 도전하며 살아왔지만, 지나오고 난 뒤 결국 인류는 달라질 것이 없는 본능에 충실한 인간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나마 역사의 경고를 통해 인간의 이성이 발휘되어야 할 때를 적절히 알고 통제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냉소적인 의견을 가졌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핵과 인공지능의 새 국면에 들어선 인류는 스스로 신이 되려 한다고 한다고 말한다. 스스로 신이 되려는 인간이 본연에 숨겨져 놓은 선(善)을 조금이라도 발견하고 지키려 애쓴다면, 아직 '역사의 시간'에는 그래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나의 결론은 하나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나부터 극단적인 악(惡)이 아닌 선(善)으로서 포용하고 화해하려고 애쓰며 살아간다면,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조금 더 앞으로 걸어가는 '역사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한국 배상책임 첫 인정… 각계 환영(종합) - 천지일보
[천지일보=홍수영·최혜인 기자]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 측이 우리나라 정부를 상대로 낸 국가배상 소송 1심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의혹을 인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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