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평

동물농장 / 조지오웰 / 민음사


 누가 돼지를 걷게 하였는가?
 
  요즘 그 어떤 예능보다 뉴스가 제일 재미있다. 훈훈해야 하는 연말, 한해를 잘 마무리하는 덕담보다 정치와 관련된 굵직한 이슈에 대한 이야기가 대화의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평소 무기력하게 뉴스를 바라보던 나 역시 TV채널을 돌려가며 뉴스특보를 보는 일이 많아졌다.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되었는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최근 가장 많이 고민해 보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살아가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이 추운 날씨에 거리에서 다양한 집회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얼마나 많은 목소리들이 참아왔을까 실감한다. 또 한편에는 이를 지지하고 찬성 의사를 밝힌 연예인들을 CIA에 고발하는 집단이 등장하는가 하면, 정치색을 드러냈다고 불편한 심기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정치인도 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읽었다. 시기적으로 참 적절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설적인 화법과 빠른 전개과정으로 쉽게 읽어 내려간 소설이었다. 오래전에 쓰인 우화임에도 여기에서 나오는 사회상을 지금에도 그려볼 수 있다는 점은 꽤 흥미로우면서도 다소 무거운 질문들을 남긴다. 그 질문에 답해보면서 이 소설을 정리해 본다. 
 
    
  소설에서 풍차를 둘러싸고 많은 사건들이 벌어진다. 처음에는 풍차건설을 둘러싼 갈등 사이에서 권력의 균형이 깨졌고, 두 번째는 절반쯤 지어진 풍차가 천재지변에 무너졌으며, 세 번째는 완성된 풍차가 침략자에 의해 폭파되었다. 풍차를 짓기 위한 재료를 구하기 위해 더 고된 노동을 해야 했고 먹을 것은 부족해졌다. 지칠 법도 한데 그들의 마음은 행복했다. 풍차가 모든 것을 보상해 주었기 때문이다. 풍차가 폭파되었을 때 복서와 스퀼러의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저 총은 뭣 때문에 쏘는 건가?" 복서가 물었다. 
"우리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서요" 스퀼러의 대답이었다. 
"무슨 승리?" 복서가 되물었다..(중략) 
"동무, 무슨 승리라니? 우린 적들을 이 동물농장의 신성한 땅에서 몰아내지 않았소?" 
"하지만 저들은 우리 풍차를 파괴했어. 2년간 피땀 흘려 세운 풍차가 아니오?" 
"무슨 상관이오? 우린 또 다른 풍차를 세울 겁니다. 좋다면 풍차 여섯 개를 세울 거요. 동무는 우리가 방금 이루어낸 이 거대한 승리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단 말이오? 적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이 땅을 점령했더랬소. 그런데 우리는 나폴레옹 동무의 영도 아래 그 뺏겼던 땅을 한 치 남김없이 되찾은 거요" 
"그럼 우리 것을 되찾았군 그래" 복서가 말했다. 
"그게 바로 우리의 승리라는 거요" [p.92-93] 
 
  복서가 말하는 '우리의 것'은 무엇일까? 이 이상한 대화를 몇 번 읽으면서 질문하였다. 가장 성실하고 열정적이었던 복서는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그는 죽음 속에서 '풍차'가 무엇이었는지 깨달았을까. '풍차'는 주객이 전도된 허무한 목표라고 생각했다. 본질은 무엇이었는지 까맣게 잊은 채 맹목적인 성실함 속에서 우리가 채워가려는 허무한 목표 같은 것들이 아닐까. 그래서 풍요와 행복을 위해 발버둥 치는 것들이 정말 나에게 본질이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풍차였을까? 
 
  변질된 계명에 저항할 수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메이저 농장에 혁명이 일어나고 동물들의 힘으로 탈환한 동물농장에는 불가변의 법률로써의 계명이 공표되었다. 모두에게 그날의 의미를 알리기 위하여 커다란 벽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적어놓았다. 그러나 그것은 변질되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누군가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변하였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처음에 흰 벽에 써 내려갔던 그 계명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나중에 그들은 무엇이 진짜였는지 기억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왜 그들의 기억을 신뢰할 수 없었을까. 기억보다 더 정확하고 명확한 '행복한 통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일요일 아침마다 권력의 대변인 스퀼러는 통계 숫자 목록을 발표했다. 숫자 앞에 자신들의 기억의 논리를 들이댈 수가 없었기에 그들은 그저 침묵하였다. 우리 사회에서도 많은 권리를 무기력하게 내어주며 살고 있지 않은지 질문한다. 질문과 기록은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에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양한 동물들 중 복서와 벤자민을 생각했다. 복서는 젊은 시절 충성을 다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며 사라진 말이었고, 벤자민은 오래 살아남아 모든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늙은 당나귀였다. 열정과 성실로 똘똘 뭉친 복서의 삶이 독자로서 좀 가련했다. 동물농장에 처음 반란 주동자들의 숙청이 있었던 날이었다. 제6 계명이 바뀐 날이다.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된다.' 충격과 공포와 혼란에 휩싸인 동물들은 그 자리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그때 복서의 대사는 독자들을 더없이 답답하게 만든다. 
 
  복서만이 혼자 서있었다. 그는 길로 검은 꼬리를 허리 쪽으로 휘두르며 이따금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는 듯 작은 소리로 히힝거리면서 이리저리 서성대고 있었다. 한참만에 그가 말문을 열었다. 
"정말 모를 일이야. 이런 일이 우리 농장에서 일어나다니. 우리 자신이 뭔가 잘못돼 있어. 내 생각으론, 더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해결책인 것 같아. 지금부터 난 아침에 한 시간 먼저 일어나야겠어" 
  그러면서 그는 육중한 걸음으로 채석장을 향했다. 거기서 그는 연거푸 두 수레분의 돌을 실어 풍차 공사장으로 나르고 나서야 눈을 붙이기 위해 마구간으로 돌아갔다. [p.77]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의 자주 볼 수 있는 특징은 문제를 만났을 때 그것을 피하지 않고 해결하려는 것이며, 해결을 위해 그 문제의 원인을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복서가 그랬다. 그러나 이것은 결론적으로 자신과 모두의 삶을 불행하게 했다.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이때 복서가 한 번이라도 의심했다면. 처음 혁명 때 만들어졌던 그 계명을 한 번이라도 상기해 봤다면. 복서는 왜 의심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장면이었다. 
 
  벤자민은 글을 읽을 줄 알았고 많은 시간을 지나온 늙은 당나귀였다. 지내왔던 시간만큼이나 염세적이었지만 내심 복서를 존경하고 있었다. 아마 그가 가지지 못한, 아니 그가 가질 수 없는 젊음의 열정, 기대와 희망 같은 것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벤자민은 의심했다. 그는 희비가 겹치는 많은 사건들과 주장들 가운데 어느 것도 믿지 않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그래왔던 것처럼 모든 것은 나쁘게 굴러갈 것이라고 말했다. '당나귀는 오래 산다네'라는 자시만의 언어로 대변했다. 벤자민은 왜 연대하지 않았을까? 벤자민이 복서와 함께 들판에서 풀을 뜯던 때처럼, 그의 염세적인 질문들과 생각들을 공유하고 젊은 동물들과 연대하였다면 상황이 좀 더 나아질 수 있었을까. 그가 말한 대로 당나귀는 오래 살았고, 상황은 늘 나빴다. 아무것도 믿지 않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그의 삶이 만족스러웠는지 묻고 싶었다. 바꿔보자고 시도했던 나의 한 표가 결국 바뀌지 않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을 볼 때 느꼈던 무기력감을 벤자민을 보며 느꼈다. 
 
  어느 날 동물농장에 돼지가 두 발로 서서 걸어 행진하였다. 그들은 다른 존재가 된 것이다. 그토록 경멸하던 두 발을 걷는 누군가와 비슷해졌다. 급기야 동물들은 누가 되지고 누가 인간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예전 그들이 도망가고 싶었던 메이저 농장 시절이 다시 도래했음을 직감하며, 그들이 느꼈을법한 후회와 무기력감이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좌절 속에서 먼저 해야 할 일은 공공의 적을 만들거나, 또다시 둔갑된 풍차를 세우거나, 어디 하나의 편에 속하여 편 가르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먼저 우리 자신에게 질문할 때라 생각한다. 누가 돼지를 걷게 하였는가? 누가 그에게 그 권한을 주었는가? 나에게 주어진 권리를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사용하였는지 질문한다. 올바르게 세상을 바라보고 정말 바꾸고 싶어 했던 희망이 있었는지 질문한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행동하였는지 질문한다. 내가 생각하는 정치란 내가 나에게 질문하고 그 질문에 확실히 대답할 수 있는 의식이다. 우리 사회가 스스로에 대한 권리를 좀 더 소중히 여기고 그 권리 행사 앞에 책임질 수 있는 성숙한 사회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