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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백초당 아이 / 정순희 / 학이산 어린이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일까

 
  어릴 적 나는 동화를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저 글 읽기보다는 어쭙잖은 글쓰기를 흉내내기 좋아하는 꼬맹이었다. 성인이 되어서야 책을 읽고 생각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어 미처 읽지 못했던 그림책까지도 다시금 접해보고 있다. 그래서 나에게 이 장편 동화는 내 인생에 처음 읽게 되는 장편 동화가 되었다. 아무리 그 어린 시절로 돌아가보려 해 봐도 나는 이미 불혹을 앞둔 어른이었기 때문에 순수한 동심의 눈으로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억지로 회귀하려는 시도 대신에 어른으로써 이 책이 나에게 어떤 생각을 가지게 할지 기대하며 책을 읽었다.
 
  주인공 휘는 일제강점기 모진 세월 속에서 씩씩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남자아이였다. 배고프고 서럽고 어렵기만 했던 그 시절은 우리가 익히 배워 알고 있지만, 이 책의 주인공 휘의 모습에서는 그런 아픔과 슬픔이 잘 묻어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일본에 건너가셔 소식이 없어 그립지만 이내 눈물을 닦고 이겨낼 줄 아는 아이였고, 어머니의 약값이 없어 주저앉아 우는 것이 아니고 그 값을 대신하여 일할 줄 아는 성실하고 의젓한 아이였다. 삶이 어려운 시절 나누는 것이 인색했던 어른들에게 모진 구박을 받아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변론하려고 가진 노력을 다 해내는 아이였고, 여느 아이들처럼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괴로워하면서도 친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비밀을 지켜줄 줄도 아는 아이였다. 그 아이에게 집중하다 보면 그 어렵고 서러웠던 시절이 아름답게 그려질 수 있다 생각했다.
 
  이런 아이들의 순수함에 대한 연민을 가진 어른들이 있었다. 휘에게 서의원은 어른의 부재를 챙겨주고, 어려운 삶에서 이겨내려 애쓰는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귀하게 생각해 주는 어른이었다. 또한 폭력과 위협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어른이었으며, 두려움보다는 의로움을 선택하여 바른 일에 대해 자신을 던지기를 아끼지 않는 어른이었다. 그런 어른이 되리라 마음먹으며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휘에게 서의원은 롤모델이 되어 주었고, 어지럽고 불안한 나라에서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약재들의 성질과 효능이 다 다르듯, 나라의 상처와 아픔 앞에서 그 시련을 마주하는 아이들은 같은 시선으로 그것을 보지 않는다. 휘는 감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고, 휘의 친구 택봉이는 산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그 아이들은 결국 시간 앞에 휩쓸려가게 자신들의 인생을 내버려 두지 않고, 정말로 그들이 원하는 감초와 산삼이 되었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며 광복을 맞이하는 장면으로 이 동화는 끝이 난다.
 
  지금이 그때만큼 어렵겠냐만은 여전히 내가 살고 있는 모든 시절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때마다 온갖 걱정과 좌절의 이야기가 나를 휩쓸고 갈 때에는 한 번씩 허무함과 무력감이 찾아오기도 한다. 질서가 무너지고 정의가 짓밟히고 당연한 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무시되고 어그러져 가는 이 시국을 보며 어른으로서 나는 아이들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질문이 끝도 없이 따라다닌다. 어떤 희망과 미래를 이야기해야 할지 난감하고 부끄러운 시국이다. 어쩌면 희망보다는 도사리고 있는 모든 위험에 대비하는 것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진 않을까. 점점 나이가 들수록 염세 적으고 비관적이 되어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무엇을 지켜야 하고 가르쳐야 할까? 어려움 속에서도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는 서의원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전해주어야 할 가장 좋은 것은 지식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며 어쩌면 반드시 지켜야 할 옳곧은 가치와 믿음일 것이다. 그 믿음은 죽음과 폭력 앞에서도 당당히 고개를 들고 다음 세대에 전달되어 고귀하게 피어나는 한 떨기의 꽃과 열매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