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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프랭클 / 청아출판사


내 삶에 충만하기


  갓 이십 대에 접어들었을 무렵, 전공 수업 중 교수님께 추천받아서 알게 된 책이었다. 절반 정도만 읽고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아우슈비츠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유태인학살 사건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이 책이 와닿지가 않았다. 흥미를 끌만한 더 좋은 것들이 내 주변에 많아서였을까. 그렇게 이 책을 포기했다.
  그리고 이십 대 후반즈음 진로갈등을 심하게 겪고 있을 때였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세상 앞에서 모든 것들이 절망적이었다. 가장 부정적이고 암울한 단어인 '죽음'이 눈에 들어왔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니.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던 책을 중간에 다시 덮었다. 완결하지 못한 책이라는 미련이 남아서인지, 이제 사십을 코앞에 두고 다시 도전해보고 싶었다. 책을 다시 열었을 때 "당신의 앞날에 햇살만 가득하길"이라는 책갈피와 함께 이 책의 소제목이 함께 눈에 들어왔다.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 안에서,
그리고 사랑을 통해 실현된다."

 
 
  이렇게 위대한 문장 앞에서 이 책 읽기를 포기했던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말하는 실존적 좌절을 겪게 해 준 지금까지의 내 삶의 시련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였다. 저자는 삶의 의미는 절대적이라고 했지만, 아직 난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정의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것을 찾기 위한 여정 중에 있다고 생각하니 약간 흥분하게 되기도 하였다.

  빅터 프랭클은 정신과 의사이면서, 원하지 않았지만 그가 치료해야 하는 환자가 되어보는 삶을 살았다. 책의 서문에 극단적인 경험들을 기록해 놓을 책임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가 경험 안에서 찾은 삶의 의미들이 절망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가 찾은 삶의 의미에 대한 고찰은 로고세러피(logotherapy)라는 새로운 요법을 창시하게 되었다. 인간은 정신역동의 메커니즘에 의해 종속되는 기계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책임을 가지고 존재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는 가능성일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인간은 과거의 트라우마에 얽매여 사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고 얘기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과 어느 정도 비슷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p.138)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나를 가장 불안하게 만든 것은 삶의 목표와 의미를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뚜렷하지 않은 모든 것 앞에서 더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살아가면서 최선을 다하였다. 하지만 삶이 어디 그렇던가. 내 뜻대로 흘러가기만 하는 인생이라면 이런 질문은 가질 수 없었겠지. 삶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일까. 열심히 살면 살수록, 가지려고 하면 할수록 찾아오는 불안과 허무의 크기를 감당하기 어려워 많이 울었던 때가 떠오른다. 저자는 이것이 실존적 좌절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지나치게 나를 분석하여 성급하게 끼워 맞추는 것을 멈추라고 한다. 대신 삶이 우리에게 주는 그때의 과제를 책임 있게 완수했을 때, 그 조각들이 모자이크로 어우러져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빛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p.242) 여러분은 우리가 굳이 '성자'에 대해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저 '훌륭한' 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소수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소수의 반열에 합류하려는 도전의지를 본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지금 아주 좋지 않은 상태에 있고, 우리 각자가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더욱더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냉소적이면서 솔직한 명제가 좋았다. 과거의 내가 이 책을 두 번이나 중간에 덮었던 이유는, 이 솔직한 질문 앞에서 일 것이다. 성인군자의 이야기 같았기 때문이었다. 불혹을 앞두고 실존적 좌절이 어떤 것인지 몸으로 느꼈을 때, 인간이 하루하루의 삶을 충만하게 살아야 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너무 먼 곳을 바라보지 않고,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한 나의 태도를 잘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위대하게 살아가는 방법임을 알 수 있었다. 너무 서둘러서 그 의미를 정의 내리지 않을 것이다. 아침에 해가 뜨고, 어김없이 시작하는 하루에 벌어질 많은 일들은,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려주기 위한 수수께끼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하루의 삶에 충만하게 살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어려운 일들 앞에서도 다시 일어나 웃을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