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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토록 평범한 미래 / 김연수 / 문학동네


기억해야 할 미래



  미래가 평범할 수 있을까. 나에게는 제목부터가 질문이었던 책이었다. 삶에서 아무리 '까르페디엠'을 외쳐도, 미래의 시간을 준비하기 위해 현재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아이들에게 미래는 어른이 되는 것이고, 어른이 되는 것은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이다. 얼른 스무 살이 되어 운전면허를 따고 싶다는 큰 아들의 미래는 적어도 밝다. 무엇을 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미래에 기대할 것이 없는 사람들. 나 역시 살아오면서 큰 시련이나 좌절 앞에서 기대를 잃어버렸을 때, 암울하게 떠오르는 미래에 불안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기에 미래는 평범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고, '이토록 평범한 미래'가 궁금했다.

  이 책에는 여덟 개의 단편소설들이 등장한다. 그 중 제일 첫 번째 소설 제목이 이 책의 제목이었다. 지민은 스스로 세상을 떠난 엄마가 남긴 소설을 읽고, 자신이 계획한 일이 들킨 것 같아 소스라친다. 지민 역시 스스로 생을 마감할 계획 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주인공의 외삼촌이 그녀에게 한 말이다.
 

"(p.29-30) 소설 속 연인은 두 번의 시간여행을 통해 시간이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시간이 없으니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어요. 오직 이 순간의 현재만 존재하죠. 그럼에도 인간은 지나온 시간에만 의미를 두고 과거에서 현재의 원인을 찾습니다. 시간이 20세기에서 21세기로 흐르든, 19세기로 흐르든 마찬가지예요. 안타까운 건 이런 멋진 소설을 쓰고서도 지민 씨의 엄마가 이십 년 뒤의 지민 씨를 기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에요. 가장 괴로운 순간에 대학생이 된 딸을 기억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선택은 달라졌을 겁니다. 용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기억할 때 가능해집니다. 그러니 지금 미래를 기억해, 엄마를 불행에 빠뜨린 아버지와 그 가족들을 용서하길 바랍니다."

 
   미래는 '기억하는 것'이었다. 엔트로피의 법칙에서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기에 우리는 과거로 갈 수 없다고 하지만, 작가는 시간이 어디로 흐르든 우리는 기억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간을 바라보는 작가의 접근이 좋았다. <비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에서 '깊은 시간'이라는 표현을 읽고,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이 드는 것이 아니고, 지층처럼 수직으로 쌓여가는 시간들이 모여서 만든 존재라는 것을 이해했다.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에서 불운한 현실에 압도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기억하는 미래 때문임을 보여준다. 손자는 할아버지가 45년 전 기차에서 자신의 여동생을 무고하게 죽인 정부 간부를 다시 만났던 이야기를 알게 된다. 그 순간 할아버지가 미래에 살고 있을 손자를 기억했기 때문에, 복수하지 않고 조용히 기차를 내릴 수 있었다. 


  소설들의 배경 장소로 유독 제주도가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소설이 쓰인 시절이 그러해서인지 '코로나19'에 대한 단서도 많이 얻을 수 있다. 저자가 이 시절 제주도에서 글을 썼을까 궁금하기도 하였다. <사랑의 단상 2014>를 읽고 나는 저자가 떠올리고 싶은 사람은 그때 그 봄 같은 아이들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보았다.

"(p.210) 자신은 이제 새들이 모두 날아가고 난 뒤의 빈 나무 같은 사람이 됐다고 생각했지만, 그 기사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한번 시작한 사랑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고, 그러니 어떤 사람도 빈 나무일 수는 없다고, 다만 사람은 잊어버린다고, 다만 잊어버릴 뿐이니 기억해야만 한다고, 거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고."


  그 뒤로 보내지 못한 세월호 유가족들의 '사랑해'가 담긴 문자 메시지들이 나온다. 이 단편을 읽고 나서 책을 덮고 울었다. 모든 것을 잃고 빈 나무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메시지였다. 과거를 지나온 고달픈 삶들이, 현재가 된 평범한 미래를 살아가는 것을 전심으로 응원하는 말이었다. 비로소 작가가 이야기 하는 평범한 미래가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평범한 미래를 기억함으로, 어떤 이에게는 증거가 되고 또 어떤 이에게는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하다'의 반대말이 무엇일까. 이 소설을 읽고 나서,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평범하다는 것은 특별함의 반대말이 아니고, 특별함과 아무것도 없는 사이의 실제적인 희망 같은 것이라고. 전혀 생경하지만은 않은, 또 아무것도 없다고 절망해선 안 되는 그 평범한 미래를 기억하며 현재를 꿋꿋하게 살아가기를 바랬던 것 같았다. 그렇게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고, 지나고 있고, 또 지나야 할 모든 삶들을 응원한다.
 
 

'어두운 시간'이 '빛으로 가득 찬 이 몸'을 만든다. 지금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이런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언젠가 우리의 삶이 될 것이다.(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