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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 말씀만 하소서 / 박완서 / 세계사




  살면서 바닥을 쳐 본 일이 있다. 이제 겨우 불혹 정도 되는 나이를 앞둔 주제에 인생 운운하며 이야기하는 것이 다소 민망하지만, 자식 일 앞에서 모든 것들이 벗겨진 채 고통을 마주해야 할 때가 있었다. 아이가 조금 다름을 아는 것을 넘어서서, 내 아이가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절망하며 좌절을 거듭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도 있을 수도 없어 몸도 마음도 괴로웠다. 그때 내 얼굴은, 가끔 보는 애들 친구 아빠가 어디 아프냐고 걱정할 정도로 거뭇했다. 나만 겨울이었던 시간이었다.

  아이들 때문에 다니던 교회에서 자꾸 문자가 왔다. "치유의 역사가 있습니다. 부흥회로 나오세요!" 교회는 우리 집에서 차로 30분이 넘는 거리이다. 저녁에 있을 부흥회에 성도들을 모으기 위해 권사님은 참으로 부지런히 도 문자를 보내오셨다. 자꾸 오는 문자에 짜증이 났다. 그런 기적이 있다면 벌써 있었어야지. 치유는 무슨. 심사가 뒤틀렸다. 나의 불행을 이용해서 자기 욕심만 채우려는 사람들 같았다. 사실 꼬인 심사는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었던 심정에 대한 반동일지도 몰랐다. 나에게 '치유'라는 말은 너무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내 안에 목소리에 솔직하기로 한 나는, 그날도 여전히 심야에 퇴근하는 남편 모르게 아이들과 교회로 출발했다.

  우리 가족을 섬겨주시는 집사님들의 도움으로 본당 맨 끝자리에 뒤늦게 도착했다. 네 살이었던 둘째는 기도인지 함성인지 모르는 소리에 그저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치유의 역사를 보기도 전에 쫓겨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둘째의 야단법석에 부목사님이 자모실로 가라고 안내해 주셨다. 이 밤에 여기까지 아이 둘 데리고 온 것도 서러운데. 자모실로 쫓겨 내려가며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온 걸까, 내가 이 정도로 바보가 되어버린 걸까 생각했다. 자모실에는 또래 아이들 열댓 명이 있었다. 그 밤 함성 같은 기도소리에 각성이 된 아이들만 부흥이 되었다. 온 천지를 뛰어다니며 아수라장을 만들고 있었다. 화면으로 나오는 목사님은 참 사람 좋게 생긴 얼굴로 열을 올리고 있었고, 아이들의 시끄러운 소음이 더해져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아아, 난 여기 왜 온 걸까. 비참하고 초라한 심정에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었지만, 집사님이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계시는 통에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했다.

  어느덧 설교말씀이 끝나고 성도들이 뜨겁게 기도할 차례였다. 나는 무엇을 기도해야 하나. 나는 도대체 여기 왜 왔나. 눈을 감고 손을 모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마음 안에 무엇인가 울컥울컥 솟구쳐 오르는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기도 소리와 아이들 소리가 뒤섞여 마음을 더 어지럽혔다. 당신이 오라고 해서 오지 않았냐고. 한 말씀만 해보시라고. 저를 왜 부르셨냐고. 오지 않았냐고. 한 말씀만 해보시라고 울면서 외쳤던 그때를 기억한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난 그 '한 말씀'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죽는 순간까지 아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던 목사님 어머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일 이후 기도하는 어머니가 되기 위해 4년째 철야기도를 꾸준히 가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읽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기도의 무게를 조금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p.104) 그래, 나는 주님과 한번 맞붙어 보려고 이곳에 이끌렸고, 혼자돼 보기를 갈망했던 것이다. 주님, 당신은 과연 계신지, 계시다면 내 아들은 왜 죽어야 했는지, 내가 이렇게까지 고통받아야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말씀만 해보라고 애걸하리라. 애걸해서 안 되면 따지고 덤비고 쥐어뜯고 사생결단을 하리라.
  나는 방바닥으로 무너져 내렸고 몸부림을 쳤다. 방 안을 헤매며 데굴데굴 굴렀다. 나는 마침내 하나의 작은 돌멩이가 되었다. 돌멩이처럼 보잘것없었고, 돌멩이처럼 무감각해졌다. 그리고 돌멩이가 말랑말랑해지려고 기를 쓰듯이 한 말씀을 얻어내려고 기를 썼다. 돌멩이가 말랑말랑해질 리 없듯이 한 말씀은 새벽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도 들려오지 않았다. 처절한 밤이었다.

 

  골방에서 외로이 울부짖는 한 많은 통곡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떤 것도 위로되지 않는 그 순간,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은 그때에 마지막으로 붙드는 심정으로 매달리는 그 기도를 나도 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경에서 욥이 그랬던 것처럼, 인간은 거룩해서가 아니고, 고통의 끝에서 홀로서기가 너무 괴롭기 때문에 신에게라도 따져보려는 것이 아닐까. 한 말씀만 구하는 것은, 신에 대한 원망이 아니고 살려달라는 간절한 외침이 아닐까 생각했다. 저자는 그 한 말씀이 수녀원에서 맡았던 '구수한 밥냄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아지는 자신을 착잡하게 바라보면서도, 또 그렇게 회복되어 가는 일상에 감사했을 것이다. 고통은 없애는 것이 아니고 같이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자기만의 지옥의 무게가 감당하기 어려워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