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제목은 왜 '흐르는 강물처럼'일까. 주인공 빅토리아가 사랑했던 윌이 삶을 살아가는 지혜로 알려준 말이었다. 빅토리아는 이 말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는데, 소설을 읽어내려가면서 나는 삶을 왜 흐르는 강물에 비유했을까 계속 질문해 보게 되었다.
400페이지가 넘는 기나긴 장편소설이었지만 읽는데 부담은 없었다. 오히려 덤덤하고 안정적인 문체가 소설을 읽는 내내 한 편의 영화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머릿속에 아이올라의 과수원이 연상되었고, 자세히 묘사되진 않았지만 윌은 어떤 사람일까 내 나름대로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빅토리아가 생명을 지키기 위해 빅 블루 야생으로 도망치며 그려지는 그녀의 험난한 여정을 마주했을 때는 더 이상 책을 덮기가 힘들 정도로 몰입되는 스토리를 갖춘 소설이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빅토리아는 시대적 고달픔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내는 인물이었다. 어머니를 여의었던 10대에 그녀는 남자들만 있는 집안의 여성 역할을 묵묵히 해냈다. 과수원을 돌보고 농장을 살피고, 가족들이 배고프지 않게 식사를 준비하고, 빨래를 깨끗이 해내는 그녀는 스스로도 착한 딸이라고 고백한다. 쳇바퀴 돌아가듯 어쩌면 숨 막히는 일상에서 윌은 자유를 선사하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소설 뒷부분에 서술하는 그녀의 아들 루카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왜 그녀가 그렇게 단숨에 윌에게 빠져들었는지, 그녀의 부드러운 결을 얼마나 위로했던 인물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빅토리아와 다른 상황이지만 닮은 삶을 살았던 잉가는 루카스의 또 다른 엄마이다. 비교적 짧게 묘사되었던 잉가의 삶은 빅토리아와 약간 혼동이 되기도 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친아들 맥스와 루카스를 쌍둥이 형제로 키웠다. 남편을 닮아 즉흥적이고 감정기복이 심했던 친아들보다는, 자동차 안에서 얻어 키운 루카스에게 더 많은 위로와 사랑을 느꼈던 것 같다. 잉가와 빅토리아는 윌과 루카스라는 인물로부터 따뜻함과 차분함, 넓은 자연과 같은 편안한 위로를 받으며 고달픈 삶을 살아갈 힘을 얻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랬던 그녀들은 루카스를 통해, 복숭아를 통해, 루카스의 나이와 같은 돌무덤을 통해, 또 언제 봐줄지 모르는 편지를 통해 연결되어 있었다.
베트남 전쟁으로 미국에서 젊은이들을 징병할 때, 맥스와 생일이 같은 루카스도 징병대상이었다. 잉가는 루카스는 진짜 생일이 그때가 아니었으므로, 루카스에게는 군으로 갈 의무가 없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그에게 출생의 비밀을 어렵게 이야기한다. 아마 루카스는 살면서 늘 스스로에게 질문해 왔을 것이다. 그는 왜 백인 부모를 닮지 않았을까. 그것이 현실이 되어 자신 앞에 사실로 나타났을 때 감당할 수 없는 상실과 슬픔에 힘들었을 것이다. 잉가는 그렇게 사라져 버린 루카스마저 잃을 수 없기에, 처음 루카스를 얻었던 그 공원에 편지를 남긴다.
(p. 416)내게 닥친 일을 피하지 않고 기꺼이 마주하며 살아왔다고, 옳은 일을 하려고 애쓰며 살아왔다고 말해줄 것이다. 어떤 존재가 형성되기까지는 시간이라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해줄 것이다. 윌이 가르쳐주었듯이 흐르는 강물처럼 살려고 노력했지만, 그 말의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해줄 것이다. 물론 걸림돌을 무릅쓰며 멈추지 않고 흘러왔다는 게 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강물처럼 나 역시 나를 다른 존재들과 이어주는 작은 조각들을 모으면서 살아왔고,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빅토리아가 잉가의 편지를 발견하고 만나기로 결심한 장면에서 그녀의 독백이다. 결국 이 소설은 네 갈래의 인생의 강물이 만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모든 걸 덤덤히 받아들이는 빅토리아에게 용기와 위로를 가져다주는, 또 다른 상실을 경험한 젤다. 그리고 잉가와 빅토리아. 이들의 공통점은 단순히 여자라는 것, 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넘어서, 그들의 아픔과 상실을 품고 여기까지 흘러온 삶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이 세 엄마가 꼭 잡은 그 손이 연상되어 많은 여운과 감동이 일렁였다. 나머지 한 갈래는 루카스이다. 삶에서 맞닥뜨린 상실과 좌절을 안고 방황하는 아들의 삶을, 넓은 엄마들의 강물이 품어줄 것이다.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루카스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했다. 다시 용기를 얻고 자신의 삶을 영위하며 나아갈 루카스의 인생을 응원하기도 하였다.
마침내 삶이 흐르는 강물 같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우리 삶이 돌이었다면, 또는 나무였다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지 않을까. 저수지로 수장되어 버린 아이올라의 모습처럼, 과거의 시련에 또는 영광에만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오늘 하루의 삶일 것이다. 시련이 물길을 막아서더라도 또다른 물줄기를 터 낼 수 있는 유연한 강물처럼, 앞으로 내 삶에 얼마나 많은 물줄기를 만날지 기대하며 사색할 수 있는 책이었다. 살면서 어려운 시간을 지나고 있을 때 빅토리아를 항상 떠올려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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