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신은 죽었다'로 절대 기준과 진리를 거부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의 디오니소스적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강조하며 마치는 니체의 철학과 관련된 책을 읽었다. 초반부에는 사실 흥미를 많이 끌지 못했다. 그동안 내가 많은 책에서 보았던 그럴듯한, 추상적인 멋진 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읽어 내려가다가 이 질문 앞에서 깊게 사색해 볼 수 있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에서 '왜 우리는 사랑을 해야 하는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서 '어떻게 해야 우리는 아름답다고 느끼는가?'
'삶이란 무엇인가?'에서 '어떻게 해야 우리는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서 '인간은 어떻게 극복될 것인가?'
(p.60)
니체는 질문의 방법을 바꾸라고 제안했다. 삶에서 진리가 무엇인지 정의하려고 하지 말고, 왜 지금 내 삶에 그것이 필요한지, 또 어떻게 이루어갈 수 있는지 질문하라고 한다. 어떤 기준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 삶에서 그것을 실현해야 하는지, 또 그것이 필요한지에 대해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니체는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행복으로 가는 길도 하나만 있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명사형의 세계에 갇혀 산다. 명사형의 세계는 고정되어 있고, 안정적이며, 예측과 통제가 가능하다. 명사형의 삶은 성공, 명예, 돈, 사랑, 권력 등 물질적인 것을 소유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삶이다. 반면에 동사형의 삶이란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행동을 하는 삶을 말한다. 모든 존재가 생성, 변화, 소멸하므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니체는 우리 가운데 누가 자신의 삶 자체, 자신의 경험에 관해서 진지하게 관심을 둔 적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즉 니체 철학은 인간이 지금까지 명사형의 삶을 살아왔을 뿐 동사형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고 지적한다.(p.114)
얼마 전 읽었던 '데미안'의 한 문구가 떠올랐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그동안 자신이 어떤 하나의 고정적 역할에 불과한 삶들을 꿈꾸며,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것은 부수적인 역할들 일 뿐이며 자신의 진정한 역할은, 자신에게 주어진 수많은 운명들을 자신의 온전한 것으로 만들어 내는 것 하나뿐임을 알게 된다. 자신은 던져진 돌이며, 던져짐을 남김없이 이루어내고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살아가는 이유임을 고백한다. 그러기 위해선 어떤 누군가의 삶을 따라가고 동경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의 상태를 혼자 견뎌내는 것이다. 저 장면을 읽었을 때, 나 역시 그렇게 어떤 하나의 역할 정도로 나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는 명사적 삶이다. 그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우리는 또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할까.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역할을 달성하는 삶으로 살기에는, 우리의 수명은 너무 길어졌고, 그렇기에 닥칠 삶의 우연적인 사건(불행이든 행운이든, 우린 불행을 더욱 두려워하는 게 사실이다)들이 너무나 많아졌다. 무엇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시간들을 채우고 버텨내기 위해 우리는 좀 더 강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니체 철학을 가장 잘 연구한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니체와 철학>에서 주사위 놀이에서의 두 순간을 말한다. (중략) 사람들이 하늘로 던진 주사위는 땅에 떨어지기 전까지 어떤 눈이든 나올 수 있다. 또한 6이라는 숫자를 원한다고 해서 꼭 주사위의 눈이 6이 나오게 할 수 없다. 즉 사람들이 던진 주사위가 뒤집히는 하늘은 우연의 영역이다. 그리고 주사위가 떨어져 1부터 6까지 하나의 숫자가 반드시 나올 수밖에 없는 대지는 필연의 영역이다. (중략) 결국 니체는 예측할 수 없는 일련의 우연한 사건을 두려워하지만 말고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p.143)
우리의 삶의 주사위를 던졌을 때 무슨 수가 나올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우연의 영역), 어차피 나올 수는 1부터 6까지이다(필연의 영역). 니체가 이야기하는, 또 질 들뢰즈가 이야기하는 주사위 삶을 나는 이렇게 이해하였다. 사람마다 초점을 두는 곳에 차이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주사위가 던져져야 수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사위를 던지는 우리의 삶을, 그리고 그 주사위 수가 펼쳐질 우리의 삶을 필연의 영역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우연의 영역을 두려워하지만 말고, 어차피 주어질 필연의 영역을 살아내는데 초점을 두는 것이 왜 중요한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큰 위로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는 네 몫이니라.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전도서 9장 9-10절)
이 책을 덮을 때 나는 이 성경 말씀이 떠올랐다. 전도서는 이 생에 아무런 새로운 것이 없음으로 허무함을 나타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아래에서 즐겁게 사는 삶들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니체가 말한 '디오니소스적 긍정'이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어질 운명을 계획하면서 낙심하고 좌절하기보다, 앞으로 주어질 삶의 이변들을 받아들이고 삶을 긍정하라는 것이다. 니체의 삶은 고통스러웠다. 고통 속에서 피어난 니체의 긍정 철학이 복잡해 보이지만, 또 단순 명료한 논리라고 생각했다. 니체를 책으로 공부하는 것보다, 고통 속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는 다양한 삶들을 접하는 것이 더 이해가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안팎으로 많은 실패와 좌절과 고통이 존재하는 요즘, 그러한 삶들에게 깊은 위로가 되어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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