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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 / 문학동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엄마가 없는 고아일 것이다. 아이를 낳고 보니 엄마는 세상으로부터 지켜줄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온 몸으로 실감한다. 큰 아이를 낳고 우연히 '베이비 박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8년간 매달 적은 돈이나마 기부를 하고 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보호막 없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엄마의 손길을 전달해보기 위함이다.

  여기 그 고아들의 이야기가 있다. 어떤 천재지변이나 사고로 인해 엄마를 잃은 것이 아니다. 이 고아들의 엄마들은 매춘부이고, 그 시대에 매춘부는 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었다. 일을 하다 실수로 생긴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거룩하지 못한 죄악 속에 태어나 축복받지 못한 생(生)으로 던져진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 중 모모의 시선으로 이 처량한 삶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7살에 처음으로 모모는 수양엄마인 로자 아줌마의 보살핌이 사랑이 아닌 돈의 원리였음을 깨닫는다. 모모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안고 하밀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질문한다.


"하밀 할아버지. 왜 대답을 안 해주세요?"
"넌 아직 어려. 어릴 때는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게 더 나은 일들이 많이 있는 법이란다."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그렇단다."
할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모모의 삶에 사랑은 없었다. 모모의 주변에는 사랑 없이도 괜찮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반듯하고 정결한 도시에 허용될 수 없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통해, 그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 수 있었다.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그곳에선, 열살 아이에게 어떤 관심과 애정은 허락될 수 없었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곳에서 만난 나딘은 모모에게 사랑이 없다는 것을 슬프게 만드는 존재였다. 아름답고 좋은 냄새가 나는, 나딘의 관심어린 표정과 눈맞춤은 모모가 얼마나 사랑에 목마른 아이인지 역설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어린 아이에게 너무 잔혹한 생(生)이었다.


  로자 아줌마는 병으로 인해 점점 기력을 잃으며 생(生)의 끝을 향해 갔다. 그녀 곁에 유일하게 남은 모모는 버겁지만 그 마저도 잃을까 끝까지 그녀를 끌어안는다. 로자 아줌마의 마지막 안식처가 되길 원했던 유태인 동굴에서, 자연의 법칙에 저항하던 모모의 모습을 몇번이나 읽었다. 차디찬 매트에 누워있는 자신의 삶 앞에 무기력하면서도 분노했을 모모를 생각하니 마음이 저려왔다. 문득 다시 그 질문이 떠오른 모모는 이제는 많이 늙어버려 노쇠한 하밀 할아버지에게 찾아간다.


"하밀 할아버지, 제 말을 못 들으셨나봐요. 제가 어릴 때 할아버지가 그러셨잖아요.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그의 얼굴이 속에서부터 환하게 밝아졌다.
"그래, 그래, 정말이란다. 나도 젊었을 때는 누군가를 사랑했었지. 그래, 네 말이 맞다. 우리......"
"모하메드요, 빅토르가 아니구요."
"그래, 그래, 우리 모하메드야. 나도 젊었을 때는 누군가를 사랑했어. 한 여자를 사랑했지. 그 여자 이름이......"
그는 입을 다물었다.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기억나지 않는구나."
나는 일어나서 지하실로 되돌아왔다.



  '사랑해야 한다'는 모모의 말로 마치는 이 소설의 끝에서, 앞으로의 생(生)을 살아가는 모모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이 소설은 해피엔딩이다. 너무 시궁창 같은 삶이어서 새드엔딩이라고 예상했지만, 분명 이 소설은 해피엔딩이다. 왜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지 깨달은 모모가 앞으로 사랑으로 채워갈 삶을 기대했다. 던져진 생(生)에서 좌절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을 추천한다. 모모의 삶을 통해 얻어지는 카타르시스는, 생(生)이 우리를 파괴하기 전에 사랑해야 할 이유를 찾게해 줄 것이다. 모모를 떠올리며 나도 오늘의 생(生)을 사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