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제목을 보고 죽음을 둘러싼 음모나 사건들의 스토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죽음 자체를 이야기 하는 정직한 소설이다. 죽음이라는 삶의 마지막 과제와 처절하게 직면하는 이야기였다. 살면서 어렵지 않게 많은 죽음의 소식을 접한다. 수많은 사건사고를 통해, 또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일어나는 극적인 죽음들. 그러나 내가 딛고 살고 있는 세상에서 그것은 멀게 느껴진다. 장례식장에서 조용한 망자의 침묵을 마주하는 표도르 바실리예비치가 그러했듯이.
올 초에 외할머니를 천국으로 보내드렸다. 죽음은 당장의 그 앞에서 오히려 슬픔을 느끼지 못하더라. 모든 장례를 다 치르고나서 집에 앉아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라면을 먹는데 울컥하며 눈물이 쏟아졌다. 그때 나는 죽음을 슬퍼한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를 이제는 만날 수 없다는 이별을 슬퍼한 것이다. 시간이 흐른 후 그때의 감정들이 진정되고 나는 또 일상을 무리없이 살아가고 있다. 죽음은 이렇게 잠깐 보여지고 사라질 뿐이라는 것을, 나는 그동안 죽음을 본 적도 만난적도 없었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깨달았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이반일리치가 들려주는 독백은 삶과 죽음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반 일리치가 지나온 인생사는 가장 단순하고 평범하면서도 가장 끔찍한 것이었다(p.20)'로 그의 삶을 시작한다. 그는 고등 법원 판사로 안정적이며 넉넉한 환경과 지위를 누렸으며, 그의 아버지 역시 페테르부르크의 관리였고 같은 삶을 살아왔다. 죽음이 끔찍한 것이 아니고, 삶이 끔찍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곧 그것은 '삶에 대한 예의 가뿐하고 점잖은 태도(p.28)'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명언들은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 단순하라고 조언하는데, 왜 단순하고 평범한 삶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평온하고 질서정연한 이반 일리치의 일상에 갑작스런 통증과 함께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운다. 그가 예상할 수도, 느껴본 적도 없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과, 치유될 수 있다는 희망과 노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심해지는 통증 앞에 무기력해지며 분노하는 이반 일리치의 독백이 인상 깊었다. 삶의 질서를 흐트리는 문제 앞에서, 이반 일리치에게는 항상 도피할 수 있는 해결책이 있었고, 능동적으로 불편한 상황을 만족스럽게 만들 수 있었다.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예심판사로서 공과 사를 넘나들며 또 그것을 지킬 수 있다는 내적 권능이 그에게는 충만했다. 그래서 이런 고통을 당하고 죽을만한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 그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지금까지 자기의 모든 것들이 가짜일 수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되고, 그의 충직하고 건강한 하인 게라심을 제외하고 모두가 자기를 기만하고 있다는 분노에 괴로워한다.
"그렇다, 전부 그게 아니었다."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여전히 '그것'을 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이렇게 자문한 다음 그는 갑자기 잠잠해졌다. (중략) 그 순간 이반 일리치는 구멍 속을 나뒹굴며 빛을 보았고, 자기 인생이 제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아직 바로잡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그것'이 대체 뭐냐고 자문한 뒤 귀를 기울이며 잠잠해졌다. 그때 누가 손에 입을 맞추고 있음을 느꼈다. 눈을 뜨고서 아들을 쳐다보았다. 아들이 가엾었다. 아내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입을 벌리고 코허리와 뺨을 적시는 눈물을 닦지 않은 채 절망적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가엾었다(p.101).
마지막 순간, 그가 귀 기울여 찾길 원했던 '그것'은 무엇일까. 고통의 심연으로 빠져들수록 그는 더이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이나 그동안의 규칙 따위로 도망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마치 무엇이 그를 통과 할 수 없는 구멍 속으로 넣기 위해 마구잡이로 막대기를 쑤셔대고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똑바로 마주하는 고통 속에서, 그를 속박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몸부림 친다. 그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의사가 그의 생이 끝났다고 외치는 순간까지 '그것'이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는다. 독자에게 묻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의 마지막 순간에 '그것'앞에서 당당할 수 있겠는가, 후회하지 않겠는가 하고.
소설의 첫 부분에 장례식 유리관에 누워있는 이반 일리치의 얼굴을 바라보는 표트르 바실리예비치의 묘사가 생각나 앞부분을 다시 읽었다. 그 의미심장한 표정이 어떤 것일지 상상하는데, 입관식때 뵈었던 외할머니의 얼굴도 함께 떠올랐다. 마지막 순간에서야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었던 이반 일리치가 가엽기도 하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마지막 과제를 통해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던 진짜 자신을 통해 치유받았기를 바란다.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 리사 펠드먼 배럿 / 더퀘스트 (0) | 2025.10.27 |
|---|---|
| 새의 선물 / 은희경 / 문학동네 (0) | 2025.07.20 |
| 맡겨진 소녀 / 클레어 키건 / 다산책방 (0) | 2025.07.08 |
|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 / 문학동네 (3) | 2025.06.19 |
| 긴긴밤 / 루리 / 문학동네 (1) | 2025.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