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다자이 오사무의 자조(自嘲)적 소설이다. 39년 짧은 생애 동안 자살시도를 다섯 번이나 하였고 마지막 시도 끝에 생을 마감했다. 당시에 기독교가 일본사회에 널리 퍼져 있지 않았지만 다자이 오사무는 기독교에 심취해 있었다고 한다. 신약성경 마태복음을 암기할 정도로 여러 번 읽었고, 자신의 문학작품에 녹여낼 정도로 아꼈던 그가 왜 삶에서는 구원받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함께 실려있는 직소(直訴)라는 단편작에서는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에게 예수를 파는 독백을 담고 있는데, 이 소설에서 느껴지는 자기혐오와 분열된 자의식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이랬다가 저랬다가, 사랑했다가 저주했다가 횡설수설하는 주인공의 목소리가 조금 애처로웠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자신의 모습을 비웃었던 걸까.
주인공 요조는 부잣집의 막내아들로 자라나 어려움 없이 생활한다. 그의 어릴 적 삶을 타인에게 익살맞은 장난꾼으로 연기하는데 보낸다. 내면을 들여다볼 용기가 없었던 그는, 술과 여자와 그림을 그리는데 방탕한 생활을 한다. 그에게는 집 안과 밖의 삶이 다른, 그저 함께 유흥을 즐기기 위한 친구 '호리키'가 있었고(그를 절대 신뢰하진 않았다), 인간을 신뢰하지 못하는 그에게 처음으로 순결한 신뢰감을 보여주는 '요시코'라는 아내가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의 요조와 요시코의 신혼집에 호리키가 찾아온다. 그 둘은 늘 그랬던 것처럼 신혼집 옥상에 올라가 흥건히 취하여 반의어 놀이를 한다. 그때 나왔던 한 질문 앞에서 멈춰 서게 되었다.
"죄, 죄의 반의어는 뭘까. 이건 어렵다."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법이지."
호리키가 태연히 그렇게 대답하기에 저는 호리키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습니다. 가까운 빌딩에서 명멸하는 네온사인의 붉은빛을 받아 호리키의 얼굴은 무서운 형사처럼 위엄 있어 보였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어이가 없어져서 소리쳤습니다.
"죄라는 건, 자네! 그런 게 아니야."(p.111)
죄의 반대말이 뭘까. 책을 넘어가지 못하고 한참을 생각했다. '기도'일까 생각했지만 사랑, 빛, 회개, 기도 같은 것들을 그는 죄의 유의어라고 생각했다. 질문을 던졌던 요조도 질문과 함께 답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언뜻 그 생각이 머리 한쪽 구석을 스치자 흠칫했습니다. 만일 저 도스토 씨가 죄와 벌을 유의어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반의어로 병렬한 것이었다면? 죄와 벌, 절대 서로 통할 수 없는 것. 얼음과 숯처럼 융화되지 않는 것. 죄와 벌을 반의어로 생각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바닷말, 썩은 연못, 난마(亂麻)의 그 밑바닥...... 아아, 알 것 같다. 아냐, 아직...... 하며 머리에서 주마등이 빙글빙글 돌고 있을 때였습니다.(p.113)
이 뒤로 그는 인생에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상실감과 절망에 빠지는 사건을 마주한다. 그 일을 계기로 더 이상 어떤 인간에게도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빈 껍데기만 남은 그는 더 이상 행복도 불행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몇 년 전 죄와 벌을 읽었다. 이 소설에서 제시하는 죄와 벌의 관계가 소설을 읽는 당시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래서 두 소설을 비교해 보았다. 죄와 벌에 등장하는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와 이 소설의 요조에게서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왜곡된 자아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마지막은 좀 다르다. 감옥에 간 라스콜리니코프는 그제야 순수한 사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새롭게 세상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리저리 분열되었던 자아가 통합되었다면, 요조는 철저히 분열되고 파괴된 자아로 끝이 난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갈 뿐이라는 마지막 고백. 희로애락을 느낄 수 없는 작가 본인이 이 허무함에 못 이겨 생을 스스로 마감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향한 가면을 벗고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자신을 인정해 주었더라면 그의 삶은 다른 모습이었을까. 죄와 벌이 반의어임을 알면서도, 진실하지 못하고 분열적인 자기에게 스스로 벌을 준 느낌이었다. 인간 본연의 모습이 연약하고 모순이라는 것. 그래서 크게 실망할 것이 없지만, 그런 인간이기에 서로 보듬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자신의 비극적 감정에 너무 빠져 그것만 쓰다듬고 있을 때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알게 된 씁쓸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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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모음] 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 / 민음사]
(p.26-27) 그러나 이런 것은 정말이지 하찮은 예에 지나지 않습니다. 서로 속이면서, 게다가 이상하게도 전혀 상처를 입지도 않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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