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만 볼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보길 원합니까? 이 책 서론에 나오는 질문이다. 앞을 보지 못한다는 생각을 평생 한 번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래서 이 질문을 처음 마주했을 때 심드렁했다. 난 매일을 볼 수 있는데, 무엇을 보지 못한다는 말인가. 진지하게 마음 깊숙한 곳에서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독서모임 발제문을 만들다가, 내 앞에 앉아서 조잘거리는 아이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우리 아이 눈이 이렇게나 맑았던가. 어쩜 이렇게 맑고 투명하지. 깨끗하게 흐르는 시냇물 속에 반짝 거리는 까만 돌처럼 촉촉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의 눈이다. 이런 나의 감정을 읽었는지 아이도 내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빤히 쳐다보며, 또 미소 지으며 오늘 하루만큼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헬렌켈러는 자신의 장애를 극복한 특별한 사람일까. 독서모임을 하며 우리는 그렇기도 하며, 또 아니기도 하다는 의견을 모았다. 헬렌켈러는 미국의 매우 부유한 귀족의 딸이었다. 특히 헬렌켈러 자서전에도 나오지만, 그녀의 모든 삶에 설리번 선생님이 항상 함께한다. 신분과 경제적 여유로부터 만들어지는 좋은 환경을 만났기 때문에, 그녀는 장애를 뛰어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녀는 특별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사람마다 모두 각자의 장애물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자신의 장애물을 이겨내고 살아온 감동적인 삶의 이야기들을 듣는다. 모두 하나의 세상이고, 모두 각자의 세계이다. 어쩌면 헬렌켈러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고, 독자들처럼 하나의 장애물을 겪고 넘어온 한 인간의 이야기로 보이길 원하지 않았을까.
(p.136) 내가 나이아가라 폭포가 준 놀라움과 아름다움에 감동받았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긴다. 그들은 묻곤 한다. "당신은 지금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음악 운운하는데 대체 그 모두가 당신에게 무슨 의미란 말입니까? 솔직히 일렁이는 파도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으르렁거리는 포효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대체 당신이 무엇을 알 수 있다는 건가요?" 보았으면 또 들었으면 다 안 것인가, 다 설명한 것인가. 사랑이 무엇이며 종교란 무엇이고 또 선함이란 어떤 것인지 설명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이나 나이아가라, 이 대자연의 스스로 그러함을 설명하기 어려운 건 피차 마찬가지 아닐까.
보이는 것의 정확한 실체를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헬렌켈러의 이 말이 깊이 와닿았다. 우리는 비록 볼 수 있지만, 참 모호하고 추상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의, 믿음, 사랑, 우정, 연민 같은 아름다운 단어들은 각자의 세상에서 각자의 정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녹여내고 있는지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너무 쉽게 어떤 한 사람의 세상을 판단하고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볼 수 있는 사람보다 더 세상을 자신의 삶에 녹여낸 그녀가 어쩌면 더 많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p.236-237) 때로 고독이 찾아들고 차가운 안개처럼 나를 에워싼다. 다만 홀로 앉아 기다린다, 인생이 닫아버린 문 앞에서. 저 너머엔 빛이 있다. 음악과 즐거운 사귐이 있다. 입장을 허락받지 못한 채 나는 문 밖에 있다. 누가 내 길을 가로막는가. 운명, 침묵, 무자비? 아, 이 가혹한 처사에 항변하련다. 내 심장은 아직도 이렇듯 펄떡거리고 들끓건만. 그러나 내 혀는 이 고통을 토로하지 못하고 입술까지 이르렀다 내뱉지 못한 말은 헛되이, 삼켜버린 눈물처럼 마음속으로 되돌아올 뿐이다. 침묵은 내 영혼을 짓누르고 저만치 희망이 미소 지으며 속삭인다. "부디 잊어버림으로써 기쁨을 찾기를." 그래서 나는 다른 이의 눈 속에 든 빛을 나의 해로, 다른 이의 귀에 들린 음악을 나의 교향곡으로, 다른 이의 입술에 떠오른 미소를 나의 행복으로 삼으려고 노력한다.
헬렌켈러의 고통스러운 마음의 번민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이었고, 그래서 이 부분을 읽을 때 마음이 울컥하기도 했다. 이 책을 쓰는 스물세 살까지 그녀를 따라다니는 어둠과 침묵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이해해 보게 되었다. 그녀는 그것을 잊어버리기로 했다. 잊어버리고 타인을 바라보면서 기쁨을 얻기를 원했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다른 사람의 귀로, 다른 사람의 미소로 행복을 찾기로 다짐했다. 얼마나 위대한 문장인가! 단순히 내가 못해서 타인을 찾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을 가두고 있는 삶의 철창을 바라보지 않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따뜻한 사랑과 우정과 희망을 바라보기로 결단한 것이었다. 그녀의 이러한 용기와 위대함이 전해지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헬렌켈러의 아름다운 삶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노력해서 극복해 냈다는 영웅적인 모습이 아닐 것이다. 삶의 비관에 대해 그녀가 갖는 태도를 다시 바라보고,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돌아보게 되었다. 헬렌켈러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 내 삶의 문제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새해를 이 책과 함께 시작하였다. 나의 영안이 열려서 결함을 보지 않고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비관을 쫓지 않고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영혼의 안식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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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모음] 사흘만 볼 수 있다면 / 헬렌 켈러 / 도서출판 사우
(p.43) 나는 비로소 이집트를 빠져나와 시나이산을 마주하고 선 것이다. 거룩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어떤 힘이 내 영혼을 어루만지고 나로 보게 하시니 많은 놀라운 것들을 내가 보았다. 거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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